우리 오빠와 火爐
임화(1908-1953, 45세)
사랑하는 우리 오빠 그만 그렇게 위하시든 오빠의
거북紋이 火爐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旗手라 부르든 영남이가
地球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時間을 담배의 毒氣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紋이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火적가락이 불상한 永男이하구 저하구처럼
또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일흔 男妹와 같이 외롭게 벽에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 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드러가실 그날 밤에
연겹허 마른 卷煙를 세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아렀어요 오빠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工場에서 도라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新聞紙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골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 하시든 世上에 偉大하고 勇敢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담배 煙氣로 房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勇敢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었어요
天穽을 向하야 기여 올라가든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 오빠의 鋼鐵 가슴 속에 박힌 偉大한 決定과 聖스러운 覺悟 저는 分明히 보았어요
그리하야 제가 永男이의 버선 하나도 채못기었을 동안에 門지방을 때리는 쇠ㅅ소리 마루를 밟는 거치른 구두소리와 함께 가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男妹의 근심을 담배 煙氣에 싸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 그래서 저도 永男이도
오빠와 또 가장 偉大한 勇敢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複糸機를 떠나서 百장의 一錢짜리 封筒에 손톱을 뚜러 트리고
永男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封筒 꽁문이를 뭅니다
지금 萬國 地圖 같은 누덕이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 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勇敢한 이 나라 靑年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한 계집애이고
永男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든 쇠같은 거북紋이 火爐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에요
그러고 참 오빠가 아까 그 젊은 남어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나는 우리 오빠 동모의 消息을 傳해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勇敢한 靑年들이었습니다
火爐는 깨어져도 火적같은 旗ㅅ발 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갔어도 貴여운 <피오닐> 永男이가 있고
그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품 제 가슴이 아즉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永男이 뿐이 굳센 兄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설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世上에 고마운 靑年 오빠의 無數한 偉大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兄님을 잃은 數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貴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야 이 다음 일은 只今 섭섭한 憤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와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어 二萬장을 부치면 사흘 뒤엔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世上의 누이동생들과 아우는 建康히 오늘날마다를 싸홈에서 보냅니다
영남이는 엿해 잡니다. 밤이 느젓어요
-전문-
▶ 한국 현대 경향시의 발자취/- 임화林和【해설 · 비평】(발췌)_ 김용직/ 문학평론가(1932-2017, 85세)
「네거리의 順伊」에 이어 다음호 『조선지광』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임화의 계급시 제작 능력이 자타가 공인하는 바 되었다. 얼핏보아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이 작품은 편지글 형식으로 되어 있다. 편지의 발송자, 또는 화자는 제사 공장의 여직공으로 생각되는 소녀다. 그녀는 인쇄공장 노동자이며 노동조합운동에 관계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오빠를 경찰에 빼앗겼다. 아마도 그는 어떤 지하 조직에 관계하면서 불법 투쟁을 모의 · 기도한 듯싶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어느날 저녁 "門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치른 구두소리와 함께" 끌려가버리는 것이다. 그들 남매에게는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상징하는 "거북紋이 火爐"도 깨어져 버렸다. 그리고 오빠를 잃은 집에는 편지를 쓰는 누이와 그 남동생인 永男이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춥고 외로운 상황 속에서도 그러나 오빠에게 편지를 쓰는 화자는 제 나름의 결의와 각오를 세우고 다짐한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프로문학이 요구하는 계급투쟁의 의지가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말씨는 설명적이면서 일종의 가락을 가지고 있다. 얼마간의 이야기를 통해 읽는 이를 공감케 하는 면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발표 되었을 때 카프 내의 비평가들은 프로시의 한 보기가 되는 것으로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선봉이 된 것은 김기진이다. 그는 당시로 보면 특례에 속하는 일로 이 작품 한 편만으로 독립된 시론을 작성했다. 거기서 八峰은「우리 오빠와 火爐」가 계급시의 이상 형태인 단편서사시에 속한다고 전제했다. 그리고는 그 질적인 수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 오빠와 火爐」는 그 골격으로 서 있는 사건이 현실적이요 실제적이요 오빠를 부르는 누이동생의 감정이 조금도 공상적, 과장적이 아니며 전체로 현실, 분위기, 감정의 파악이 객관적, 구체적으로 되었고 그리고 그것은 한 개의 통일된 정서를 傳播하는 동시에 감격으로 가득 찬 한 개의 소설적 사건을 안전에 전개하고 있다. (p.시 87-89/ 비평 89-90. 이하 생략)
▶ 한국 현대 경향시의 발자취/- 임화林和
본명은 임인식林仁植, 필명은 '星兒, 鐵夫, 金鐵友, 林唯, 靑爐, 變樹台人 등이며, 1947년 월북 후 한때 남로당의 대남 공작 문건에 실린 상당수의 글은 양남수로 서명, 발표한 바도 있다. 서울 낙산 밑 중류 가정 출신으로 1921년 보성중학 입학, 학교에서는 미술반으로 활동했으나 학교 성적은 크게 떨치지 못한 듯하다. 1925년 졸업 직전에 보성중학을 중퇴, 1926년 12월경 이미 그의 맹원으로 활동 중인 중학 동창 윤기정의 권유로 카프에 가입. 그 열성적인 활동 분자가 되는 한편 카프 산하 단체가 벌인 영화에도 관계하여 <유팡>, <혼가> 등에 주연으로 출연. 1929년 박영희의 후원으로 동경행, 동경에서는 이북만이 주도한 <무산자>에 관계하고 카프 동경지부의 일도 보는 한편 프로시인의 대표로 지칭된 바 있다. 또한 이분만의 누이동생 이귀련과 사랑에 빠져 그녀와 동서 생활이 시작되었다.
1930년 말경 귀국, 곧 김남천, 안막, 권환 등과 소장파를 형성하고 카프의 주도권을 장악, 1931년 카프의 1차 검거에 (속칭 신건설사 사건) 걸려 구금, 투옥되었으나 9월경 불기소 처분으로 석방. 1932년 4월경 카프의 서기장으로 취임. 김기진 등 구카프계의 이데올로기 완화, 예술성 추구론을 배제하고 가일층 철저한 목적의식 중심의 문학활동을 펴면서 기관지 『集團』을 발간하였으나 그 창간호는 전량이 압수되고 이어 발간한 2호 역시 삭제 투성이의 것이 되었다. 이 무렵을 전후해서 일제의 사상 통제 강화로 카프는 중앙위원회의 소집조차 불가능한 상태에 들어갔고, 맹원들 중에도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위에 설상가상격으로 카프의 2차 검거에 중앙위원회 대부분이 전주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이때 임화는 지병인 폐병을 구실로 구금 · 투옥만은 면했으나 곧 총독부의 강력한 요구로 김남천, 김기진과 함께 경기도 경찰부에 카프 해산계를 제출(1935년 4월 28일)하였다. 1937년 마산 요양소에서 돌아와 도서출판 '학예사'를 대리경영. 김기림, 김태준, 김남천, 박태원, 이효석, 최명익 등 여러 문인 학자들의 저서를 발간토록 하고, 1943년 일제의 국책회사인 문인보국회에 관여하였으며, 이와는 별도로 조선영화사에도 촉탁으로 근무, 일제의 암흑기를 요시찰 사상범으로 어렵게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1945년 해방을 맞자 곧 동지를 규합하여 문학건설본부를 발족시키고 다수 순수문학인들까지 이끌어들여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시켜 나갔다. 이어 문학동맹을 창설, 1946년 2월에는 정식으로 전국문학자 대회를 소집하고 문학동맹의 발전적 조직 기구인 조선문학가동맹을 결성, 그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해방직후 한국 문단을 주도한 바 있다. 1947년 초 군정청에서 체포령이 내려진 박헌영, 이강국 등 공산당의 고급 간부 뒤를 따라 월북, 해주에 근거를 둔 남로당의 대남 공작에 관여하는 한편 북쪽 문예조직 활동에 참여, 6 · 25사변이 발발하자 종군 작가로 서울에 나타났고, 이어 낙동강 전선에까지 이르렀으나 유엔군의 반격으로 재월북, 1951년 5월 김남천이 책임자로 있는 '문화전선사'에서 전선 시집 『너 어느 곳에 있느냐』를 출간하였다. 일곱 편이 담긴 이 시집 작품은 한때 빛나는 전선시로 널리 전선과 후방에 배포되었으나 곧 남로당계 숙청의 회오리에 말려들었다. 1952년 말경부터 열린 노동단 전원회의에서 이승엽 일당과 내란 음모, 미제의 고용간첩 활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어, 8월 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p.80-81)
▶ 문학사 메모(발췌)
임화가 북쪽에서 간첩과 내란 음모죄로 체포 · 투옥된 것은 1952년 말경으로 추정된다. 구속 후 조사 · 신문 과정에서 林和는 갖가지 고문을 당하고 혹독한 시련을 맛보았다. 그리하여 자살을 기도, 안경을 깨어 그것으로 동맥을 끊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p.113) (……) 그에게 적용된 법적 근거는 인민 공화국의 형법 제78조, 제65조 1항과, 제76조, 제68조, 제50조 1항, 제86조 등이며 그에 따라 사형이 선고 집행된 것이다. 당시 임화의 나이 45세. 그후 그의 시체는 묻어주는 사람조차 없이 방치되었다. 그의 죽음은 그 자신이 등진 남쪽에서 뿐만 아니라 林和 자신이 그렇게 동경해 마지않은 사회주의 조국에서조차 버림받고 모독된 것이다. (p.114)
* 블로그주: 이 책에 실린 임화의 작품들/「曇一九二七 」「네거리의 順伊」「우리 오빠와 火爐」「雨傘 쓴 요꼬하마 부두」「玄海灘」「발자욱」「높은 산 봉우리 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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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容稷 著 『현대 경향시 해석 / 비판』에서/ 1991. 9. 15. <느티나무> 펴냄
* 김용직/ 1932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 국어국문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1977),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수, 著書 『한국문학의 비평적 성찰』『한국현대시연구』『전형기의한국문학비평』『한국근대문학의사적이해』『한국근대문학논고』『문예비평용어사전』『한국근대시사(상 · 하)』『현대시원론』『해방기 한국어 문학사』『임화문학연구』외 다수, 공저 & 편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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