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여상현(호적:1914. 2. 9~ / 족보:1913. 1. 20~ / 1964. 12. 5, 生死不明其間만료/p. 301-302)
논두렁ㅅ 가로 바스락 바스락 땅강아지 기어나고
아침 망웃 뭉게뭉게 김이 서린다.
꼬추잠자리 저자를 선 黃土물 蓮못가엔
藥에 쓴다고 비단개고리 잡는 꼬마둥이
녀석들이 움성거렸다.
바구니 낀 계집애들은 푸른 보리밭고랑으로 기어들고
까투리는 쟁끼 꼬리를 물고 山기슭을 내리는구나
꿀벌레 노오란 장다리 밭에서 잉잉거리고
洞口밖 지름길로 감모를 달아맨 괴나리봇짐이 하나 떠나간다.
城隍堂 돌무데기 욱어진 찔레낡엔
사천 하얀 조이쪽이 나풀거리더니 꽃이 피였네
느티나무 아래 빨간 自轉車 하나
자는듯 고요한 마을에 무슨 소식이 왔다.
-전문-
해방을 맞은 기쁨을 이 정도로 차분히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대부분 구호적인 영탄의 시들과 비교할 때 그 시적 수월성이 어떤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p. 321)
조선문학가동맹의 조직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부터 문인집단의 월북이 구체화된다.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조직하고, 프롤레타리아문화의 건설을 요구했던 이기영, 한설야 등은 1945년을 넘기면서 이미 서울문단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1946년이 지난 후에는 한효, 이동규, 윤기정, 박세영, 안함광, 송영, 안막 등이 모두 서울을 떠나버렸는데, 이들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의 중심인물로서 조선문학가동맹의 조직에 가담한 후에 그 노선에서 이탈한 강경파들이다. 이들의 월북을 문인집단의 제1차 월북(제1차 월북파의 월북 이유는 두 가지 사실로 집약된다. 첫째는 조직의 문제이며, 둘째는 이념노선의 문제이다. 조선문학가동맹은 형식상 조선문학 건설본부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실질적인 조직의 주도권을 잃은 데다가 그들의 이념적 선도역할을 담당했던 이기영, 한설야 등이 평양에서 독자적인 문단조직에 손을 대기 시작하자, 평양문단에 자연스럽게 합류한 것으로 생각된다. 말하자면 문단적 지위의 불안이 월북을 재촉한 하나의 동기라고 할 것이다. 더구나 조선문학가동맹은 조선공산당이 내세운 문화운동노선에 따라, 극우 · 극좌노선이 문화통일전선을 방해하는 장애요인임을 천명했고, 진보적인 민주주의 민족문화건설이 당면과제임을 내세우고 있다. 이것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이 지향하고 있었던 극좌노선의 프롤레타리아혁명론과 프롤레타리아문화건설론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이념적인 차이와 전술상의 차이를 그러내는 것이다. 특히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의 중심인물들이 조선문학가동맹의 조직운동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문화통일전선운동을 방해하는 분파주의로 지목되었던 것은 이들의 조직이탈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겠다.<권영민,『해방공간의 문학운동과 문학의 현실인식』, 한울, 1989, 335쪽 참조> )으로 규정할 수 있다. 1947년 후반을 지나면서 다시 조선문학가동맹의 핵심간부들이 월북하기 시작하는데 이태준, 임화, 김남천, 이원조, 오장환, 임학수, 박팔양, 김오성, 윤세중, 안희남 등이 이들이다. 기 같은 문인집단의 2차 월북은 정부수립 직전까지 계속되었다.(제2차 월북문인집단은 조선문학건설본부-조선문학가동맹으로 이어지는 문화통일전선운동의 중심인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조선문학가동맹이 소속되어 있던 조선공산당의 불법화과정에서 월북했으며 황해도해주에 거점을 두고 있던 남로당의 지도부와 결합하여 대남공작을 기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38선은 점차 공고화되고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이 확장되면서 남북분단이 기정사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조선문학가동맹에는 김기림, 박태원, 정지용, 설정식, 이용악, 송완순, 홍효민, 김용호 등이 남아 있었지만, 1948년 8월 대한민국정부수립 후 이들은 모두 사상적 전향을 선언하고 보도연맹에 가담하여 자신들의 전향 의지를 실천해 보이기도 하였다. <위의 책, 336쪽 참고> )
1950년 6 · 25 전쟁이 발발하자 문단은 다시 혼미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태준, 임화, 김남천, 안희남, 오장환 등의 월북문인들이 전쟁 중에 서울에 나타났고 많은 문인들이 다시 납북, 월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광수, 김동환, 박영희, 김진섭, 김억, 김기림, 정지용, 박태원, 설정식, 이용악, 여상현, 임서하, 송완순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북행하였다. 이들의 북행을 제3차 문인집단의 월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문인들이 강제 납북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상현이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 서기로 임명될 뻔했던 일과 6 · 25 전쟁 이후 종적이 묘연, 납북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실은 그의 시가 해방공간에서 어떤 식으로 전개, 변모되는지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전기적 사실들이다. 해방을 맞이한 직후에 쓴 「봄날」은 감정의 직접적 토로를 지양하고 언어를 절제, 차분한 심경으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p. 319-321)
【 "평가를 받지 못한 여상현의 이 당시의 시편들은 다른 모더니즘 시들 속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주제에 있어서나 기법에 있어서나 아직 확실하게 구축하지 못했다. 그의 시는 김광균의 건조한 회화적 이미지와 서정주나 오장환의 울부짖는 듯한 표현주의적 지향의 중간에 놓여 있는 듯이 여겨진다. 이것은 중도적 균형감각이라기보다 일종의 모색적 자기방황의 모습에 가깝다. 그는 시적 대상들에서 자신을 지우고 철저히 시적 재료를 가다듬는 언어의 공예가로서도,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하나의 중심적인 형이상학적 주제나 실존주의적 탐구로서도 정립하지 못했다. 「종로168호」, 「장」같은 시들은 비교적 후자에 가깝고, 「호흡」이나 「삼림」은 전자에 가깝다. 그러나 이 시들의 내밀한 흐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현실 비판의식이다. 그것은 그의 시 창작에 있어 그의 실존적 의식에 미약하게 연결되어 있다."(신범순,『한국 현대시사의 매듭과 혼』, 221쪽 참조, 민지사, 1991)
여상현 시인의 시 내면에 존재하는 현실비판의식이 이미지 구축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상현의 시적 형상의 의미가 현실을 외면하고 있지 않은 점, 진살하게 고뇌하는 시인적 면모와 민족에 대한 애정을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주목하고 싶다. 여상현이 시작 활동을 하던 당시엔 임화만이 그의 시를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임화의 「진보적 시가의 작금」(『풍림』37.1)에 기인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상현의 시는 오장환의 시적 경향과 유사한 반면 서정주, 김동리와는 상이한 시적 경향을 띄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전력이 카프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충실하게 문맹의 행동노선을 지킨 일군의 순수파의 시인이 있다. 그 대표젹에 해당되는 것이 오장환, 여상현, 이용악 등이다. 먼저 오장환과 여상현은 다같이 「詩人部落」출신이다. 그리고 8 · 15 이전에는 계급의식에 입각한 시를 쓰지 않았다. 우선 오장환이 8 · 15 이전에 쓴 대표작엔 「城壁」(「詩人部落」1. 1936. 11), 「喪列」(「시인춘추」2, 1938. 11 1936. 11),「The Last Train」 (「비판」1938. 5) 등이다. 이들 작품에서 오장환은 막연하게 우리 주변의 감정을 작품화 했을 뿐 계층 감정을 곁들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런 사정은 여상현의 경우에도 그대로 되풀이된다. 「시인부락」에 발표한 그의 시는 그 정신의 단면이 초현실파의 작품세계를 느끼게 한다. …중략 … 다만 이용악의 경우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김용직,『해방기 한국 시문학사』, 195~196쪽 참조, 민음사, 1989)
오장환과의 연관성은 여상현이 당시의 현실을 시로 형상화하려 한 점 등 참여의식의 시인적 발로에 둘 수 있으며 반면에 구경적 탐구에 역점을 둔 서정주, 김동리와는 다른 시적 경향을 확연히 보인다.(p. 349-350)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 연구는 자칫 소외되기 쉬운 시인에 대한 필자의 의욕에서 출발한 것이다.(p. 350)
필자는 이상과 같은 연구과정을 통해 그의 문학사적 의의를 조명하여 다섯 가지 항목을 제시하였다. 본고는 작품의 고찰에 좀 더 비중을 두려 했는데, 한 작가를 평가하는 문제에 있어서 작품에 대한 검토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문학자체가 이미 삶에 대한 해석이라는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시인의 삶 전체가 그러한 조건들 속에 놓여있기(김우창, 『궁핍한 시대의 시인』, 민음사, 1985, 356쪽 참조) 때문이다. 여상현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어 여상현 시의 다각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p.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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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타모포시스 인문학총서 003『메타모포시스 시학』에서/ 2019. 11. 30. <선인> 펴냄
* 전해수(본명, 全映珠)/ 문학평론가, 저서『1950년대 시와 전통주의』(2006),『목어와 낙타』(2013),『비평의 시그널』(2018) 등, 문학박사(동국대학교), 현재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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