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뜩 지나가는 악몽 휘뜩 지나가는 악몽 정숙자 (지구 밥 먹은 지 육십여 년, 농부의 밥, 무관의 옷, 문인의 욕… 어떤 끼니도 고마웠으나 그중 관격關格 모르고 먹었던 밥은 내 아버지 손끝 흰 밥이었다.) 회의장에 여럿이 둘러 앉았다. 한 교실, 한 강당, 한 광장일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참석..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8.11.26
내 죄는 시간에게 물어라 내 죄는 시간에게 물어라 정숙자 옛 벗을 서운케 한다 즉자도 신중히 먹은 맘이다 막막하거나 막 젖을 때 버나드 쇼의 독설만이 위안으로 재생된다 "본인이 없다는데 무슨 이의인가?" 그 엄청난 의지만이! 옛 벗은 내가 외출했다는 걸 모른다 내 얼굴 안쪽에 길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 ..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8.11.17
이슬 프로젝트-43 이슬 프로젝트-43 정숙자 그는 그 자신의 아나키스트// 어둠뿐인 슬픔뿐인 우울 하나-왕이 된 생애. 날마다 각오 각성하는, 그는 그 자신의 아나키스트-아방가르드. 자신 말고는 적군도 요새도 없는 그는 그 자신의 아나키스트-아방가르드. 문 밖 강물은 소리 없이 깊어지고 뒤꼍 대나무들 ..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8.11.16
죽은 생선의 눈 죽은 생선의 눈 정숙자 죽고 싶다. 죽어야겠다. (차라리) 그런 마음. 꺼내면 안 돼. 왜냐고? 저 머나먼 경계 밖에서 그랬잖아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 (진정으로) 그런 바람 포개다가 여기 왔잖아 엄마-wormhole을 통해 왔잖아 갖고 싶었던 그 삶 지금이잖아. 여기가 거기잖아 죽어본 적 없으면서 겁 없이 '죽음 희망' 그런 거 품지 말자꾸나. 우리! 경험으로 죽는 건 괜찮지만 경험일 수 없는 죽음 속에서 오늘 이 순간 아주 잊은 채 다시 태어나고 싶을 거잖아? 이게 몇 번째 생일까 생각해봤니? 만약 말이야. 그 비밀이 열린다면, 우린 또 얼마나 큰 후회와 자책/가책에 시달릴까 생각해봤니? 접시에 누운 생선이 나를 바라보면서··· 종을 초월한 자의 언어로 그런 말을 하더군 그로부터 난 생선의 눈을 먹..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8.11.06
이슬 프로젝트-39 이슬 프로젝트-39 정숙자 하늘에게 책 읽히기// 마음을 따라갑니다. 마음이 하자는 대로, 저는 시의 길도 그렇게 따라나섰습니다. 시가 자연을 말하자 할 땐 구름과 바람을, 사랑을 그리자 부추길 땐 그리움과 외로움을, 삶을 노래하자 조를 땐 고독과 고뇌를 조각했습니다. 마음 따라 파도..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8.09.28
얼음은 직선으로 부서진다 얼음은 직선으로 부서진다 정숙자 녹음 ~ 흐름~~~ 이미 나유타 겁의 경험을 내재한 그 그의 순수는 선천적이라지만, 어느 정도는 경험의 소산일 거야. 그의 전신, 혹은 그의 의식은 어떤 경우에도 (가급적) 대상을 왜곡지 않아. 볕을 만나면 유유히, 혹한이 스미면 서서히 멈추곤 하지 그러..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8.09.27
이슬 프로젝트-40 이슬 프로젝트-40 정숙자 내 생애 가장 쓸모없는 짓을 한 날의 기분// 제가 하는 짓이 대개 쓸모없는 짓이지만, 오늘의 이 일만큼 쓸모없는 짓은 처음입니다. 진정 여태까지의 삶을 통틀어 가장 쓸모없는 짓을 했습니다. 내용인즉, 빨간 강낭콩 모양의 알약을 두어 달째, 한 개씩, 아침마다 ..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8.09.24
북극형 인간 북극형 인간 정숙자 육체가 죽었을 때 가장 아까운 건 눈동자다 그 영롱함 그 무구함 그 다정함 이, 무참히 썩거나 재가 되어버린다 다음으로 아까운 건 뇌가 아닐까 그 직관력 그 기억력 그 분별력 이, 가차 없이 꺾이고 묻히고 만다 (관절들은 또 얼마나 섬세하고 상냥했던가) 티끌만한 ..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8.09.23
이슬 프로젝트-41 이슬 프로젝트-41 정숙자 시가 마쳐지지 않을 땐// 아침 한 끼 뮤즈에게 바친다. 아테네인들이 병이 나았을 때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바쳤던 풍습. 소크라테스가 햄록을 마신 후 “내 대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바쳐”달라고 당부했던 일. 삶을 병으로 해석한 그. ..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8.09.17
완전명사 완전명사 정숙자 신생아에게 어른은 신이다 태어나자마자 울지 않으면 그는 온전한 인간으로의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어른은 그 손 지키기 위해 두 발목 거꾸로 모아 들고 볼기를 친다. 울어라, 울어라, 울어라, 소리쳐 울지 않으면 안 된다 살려거든 울어라 아기가 가까스로 울음을..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8.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