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뜩 지나가는 악몽
정숙자
(지구 밥 먹은 지 육십여 년, 농부의 밥, 무관의 옷, 문인의 욕… 어떤 끼니도 고마웠으나
그중 관격關格 모르고 먹었던 밥은 내 아버지 손끝 흰 밥이었다.)
회의장에 여럿이 둘러 앉았다. 한 교실, 한 강당, 한 광장일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참석자가 각기 조용히
발언하거나
기도하는
대화편
나는 굳이 그것을 생각이라거나 의식 고통 분별 따위로 긋지 않고 '회의하다'로 묶기로 했다. 사소한 문제라도 발생하면 국가는 회의하고, 가족도 회의하고, 연인들 또한 강물을 사이에 두고 잠 못 들어 하지 않는가.
심사숙고의
자신과의
대화를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체계란
대뜸 컹컹 물어뜯거나
벼슬 시뻘거니 후다닥 달려들지 않고
심호흡 조절하는 해녀들과
도끼-날 아끼는 나무꾼들과
문무백관 불러 모아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 결과
조금씩 개선되고
늙어가며
아무런 의문 없이 죽을 수도 있게끔,
(부모님 논밭에서 내다본 미래가 어느 새 60여 년! 무관의 관은 쇠가 씹혔고, 문인의 문은 육중했으며 고리가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잠깐이었다. 다만)
숫돌 위 칼등은 오늘도
회의, 회의 중
내일-모레도-믿을 데라곤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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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2018-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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