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형 인간
정숙자
육체가 죽었을 때 가장 아까운 건 눈동자다
그 영롱함
그 무구함
그 다정함
이, 무참히 썩거나 재가 되어버린다
다음으로 아까운 건 뇌가 아닐까
그 직관력
그 기억력
그 분별력
이, 가차 없이 꺾이고 묻히고 만다
(관절들은 또 얼마나 섬세하고 상냥했던가)
티끌만한 잘못도 없을지라도 육신 한 덩어리 숨지는 찰나. 정지될 수밖에 없는 소기관들. 그런 게 곧 주검인 거지.
비
첫눈
별 의 별 자 리
헤쳐모이는 바람까지도
이런 우리네 무덤 안팎을 위로하려고 철따라 매스게임 벌이는지도 몰라. 사계절 너머 넘어 펼쳐지는 색깔과 율동까지도
북극에 길든 순록들 모두 햇볕이 위협이 될 수도 있지
우리가 몸담은 어디라 한들 북극 아닌 곳 없을 테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녕
햇빛을, 봄을 기다리지, 죽을 때 죽더라도
단 한 번 가슴 속 얼음을 녹이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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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정신』 2018-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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