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이슬 프로젝트-41

검지 정숙자 2018. 9. 17. 17:44

 

 

    이슬 프로젝트-41

 

    정숙자

 

 

  시가 마쳐지지 않을 땐// 아침 한 끼 뮤즈에게 바친다.

 

   아테네인들이 병이 나았을 때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바쳤던 풍습. 소크라테스가 햄록을 마신 후 “내 대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바쳐”달라고 당부했던 일. 삶을 병으로 해석한 그. 죽음을 활짝 피워냈던 그.

 

   입체적인 소리와 바람과 물결까지 들이대어도 채워지지 않는 원고를, 천정 높이 쳐들고 바라보다 잠든 나의 어젯밤. 간밤 그대로 그 원고 다시 들어 올려 들여다보는 무수한 날들의 아침. 그렇게 승산 없는 시간만이 떠내려갈 때.

 

   닭 한 마리는 아닐지라도, 꿩 반 마리를 바치는 심경으로 나는 으레 아침 한 끼를 바치곤 했다. 의술과 뮤즈와 학예의 신 아폴론에게 한 끼의 배고픔을 봉헌하는 것이다. 이 원고 마쳐야만 밥을 먹겠나이다. 떼를 썼던 (쓰는) 것이다.

 

   경외하는, 사랑하는 나의 뮤즈는 언제 배고픔을 경험해본 것일까. 풍성했던 검은 머리가 희다 못해 빠지기까지 하는 이 나이토록 그는 나에게 한 끼 이상을 요구한 적이 없다. 그 한 끼의 굶음조차 차마 보지 못하여 예외 없이 늘,

 

   원고를 채워주는 것이었다. 혹, 나의 남은 끼니를 모두 바친 어느 날. 그 아침에도 뮤즈는 모자란 한 줄을 엮어 주실까. 굳이 가 갸 거 겨가 아닐지라도 저 맑은 바람과 별과 구름들과 이슬의 문장으로써. 그 누구도 읽지 못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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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창작2018-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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