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숨이었다는 생각
박일(1969~2021, 52세)
말아진 멍석에 남겨진 나락 한 톨처럼
외딴 방에 처박혀
밀린 대본을 외우듯 숨을 들이키네
희미한 거울 앞에
웃음도 묻혀가네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먼지라도 되어
방을 빠져나오고 싶네
그러한 이때 목련은 지침을 내리며 다녀가네
하루를 살아도 꽃처럼 꽃처럼,
지난해 된똥 한번 싸지르고 단방에
숨죽었던 애기똥풀 어렵사리 다시 온
그도 조심히 이르네
백년을 살아도 부디 꽃처럼,
온 산 뒤덮는 진달래 꽃은 헛되이
지지않네 영취산 녹음의 절반이
말없이 다녀간 진달래의
겸허한 발자취였다는 사실
며칠 전 분양해온 강아지
날 보고 웃네
는적는적한 땅거미 지기 전 발맞춤을
서두르자하네 생生이란 것이
길든 짧든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배려하며
갈 때는 그저 말없이 꽃처럼 다녀가야 하리라는
한낮의 얕으나 깊은 각인
-전문-
박일 시인이 2021년 4월 11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52세. 1969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여 2000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공원에서」 외 2편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난』이 있다. 시마을 동인, 전북작가회의 회원이며, 前 한국 난 영농조합 법인 사무총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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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1-5월(3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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