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미래사회와 문학의 영역
김후란/ 시인 · 한국문인협회 고문
중앙아시아 고려인들 방문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밤길, 광활한 언덕길에 차를 세우고 잠시 풀밭에 내려 휴식을 취하던 때였다. 맑은 공기에 가슴을 펴면서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일순간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저 하늘에 주먹만한 별들이 꽉 차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와아, 일행은 누구랄 것도 없이 함성을 지르며 한동안 눈부신 별들의 세계에 압도되어 있었다. 생전 처음 가까이 보이는 별들의 실체에 황홀해지면서 손을 뻗어 그 큰 별을 한두 개 따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보아 오던 밤하늘 별들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돛대도 아니 달고~'로 동심을 자극하던 꿈과 함께 아득한 허공에 반짝이는 머나먼 세계였다. 그나마도 갈수록 도시의 불빛에 밀려 희미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오래 전의 일이지만 고원지대에 속하는 중앙아시아 여행길에서 만난 확대된 별들이 지금도 나에게 생생한 추억이 되고 있다.
언젠가 해외 토픽으로 파리의 신문에 실렸다는 광고 사건이 생각난다. 내용인즉, 아주 싼 비용으로 더구나 조금도 피곤하지 않게 우주여행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으니 희망자는 신청을 하라는 내용이었는데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지정된 액수의 돈을 우송한 결과 다음과 같은 회답을 우편으로 받았다고 한다.
'당신은 지금 곧 창가에 침대를 당겨 놓고 조용히 누워서 이 지구가 돌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파리의 위도상에서는 당신은 하루에 2만 5천여 킬로미터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림 같은 우주의 경치를 보고 싶다면 창문 커튼을 젖히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이 편지를 받은 사람들이 즉각 사기죄로 고소를 했고 터무니없는 소리로 남의 돈을 갈취했다고 해서 벌금형이 내려졌다는 뉴스였다. 그리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돈을 벌어 보려다가 벌금을 물고 나오면서 그 문제의 사나이는 한마디 하기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지구는 돌고 있어!"
저 유명한 갈릴레이의 독백을 그도 진심으로 내뱉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에 지구의 자전설自轉設과 자동설地動說을 지지했던 과학자 갈릴레이가 억지 학설을 유포했다고 유죄 판결을 받고 종신 가택연금 끝에 외로운 임종을 했다. 그 후 1980년 당시의 판결이 잘못이었으므로 갈릴레이는 무죄임을 선언한다는 교황청의 역사적인 발표가 있었다.
갈수록 더욱 현실화되어가는 첨단과학의 발달은 진실을 규명하는데 기여를 하고 인간 생활의 현재와 미래를 폭넓게 전망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변화를 체험하는 현대생활 속에서 한층 과감한 연구가 요청되는 시대이기도 하며, 아직은 꿈같은 일이기는 하지만 무언가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을 안고 사는 시대이기도 하다.
예컨대 특수안경을 쓰고 입체적인 화상으로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영화라든가 가상게임에 몰입하는 전자오락관 등에서 현대인들은 현실을 초월하는 여러가지 상상 경험을 즐긴다. 뿐만 아니라 1969년 7월 21일 달에 인류의 첫 발자국을 찍었던 미국 NASA의 경우, 이제는 민간인도 우주여행을 할 떄가 되었다고 선언, 얼마 전 최초로 뽑힌 사람이 성공적으로 며칠간의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호기심 많은 억만장자 민간인들의 예약도 호응이 좋다고 하며, 미국의 한 자선 사업가는 우선 소아암 환아들에게 우주여행 체험을 시켜 주려고 나섰다는 뉴스도 보았다.
이 모든 일들이 저 광막한 우주를 정복해 보려는 인간의 오랜 꿈이 하나하나 현실화해 가는 것이라 하겠다.
이보다 좀 더 현실적인 변혁은 인공지능과 첨단정보통신기술이 우리네 생활 깊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뇌공학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점차로 인간의 지적 능력을 초월해 가는 단계이긴 하지만 영혼이 없는 첨단기계이어서 아직은 인간에게 충직한 상호 조력자 역할로서의 존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예술 분야에까지 로봇의 능력 발휘가 침투하여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한다고 하는 만큼 문학인들도 긴장을 아니할 수가 없다. 다만 미래사회가 어디까지 달려갈지 모르지만, 문학은 인간생활에 꿈꾸는 윤택함을 주는 사색의 세계이며,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영혼이 숨 쉬는 쉼터를 제공하는 것이라 할 때 인공지능의 침략에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영국 시인 위리엄 브레이크의 시에서 크게 공감되는 게 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 안에 무한을 쥐고/ 한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리." 이런 시를 쓰고 읽고 음미하는 문학인들은 결코 인공 로봇과 비교될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우주를 정복하려는 인간의 꿈이나 인공지능의 탁월한 능력이나 모두 과학자들 힘으로 개척해 가는 첨단과학이라 할 때, 문학 창작 활동을 하는 우리 문인들은 긍지를 가지고 또다른 차원에서 무한히 크고 깊은 세셰와 마주해야 할 것이다. 채근담菜根譚에도 이런 뜻깊은 구정이 있다. "사람들은 글자 있는 책만 읽고 글자 없는 책은 읽지 못하며, 줄 있는 거문고는 뜯어도 줄 없는 거문고는 뜯을 줄 모른다. 현태 있는 것만 쓸 줄 알고 그 정신은 모르나니 무엇으로 책과 거문고의 참 맛을 얻으랴."
실체보다 정신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면서 로못 역시 기계의 정밀함은 인정하되 속깊은 정이나 마음이라는 영혼의 부딪힘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차이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의 무서운 역병으로 우리네 생활이 총체적으로 위축되고 있지만, 언젠가는 사라져 인간생활도 정상화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 모두 침착하게 이 곤경을 이겨내면서, 파리의 그 사나이가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고 외친 것처럼 창가에서 밤하늘 별들을 바라보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많은 별들이 저 하늘에 여전히 가득 했음을 생각하면서 자전하는 지구를 우리의 능력과 상상으로 천천히 체감하고 글자 없는 책을 읽고 줄 없는 거문고를 타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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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1-6월(628)호 <권두언>에서
* 김후란/ 시인, 한국문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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