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단장취의(斷章取義)의 각색/ 강기옥

검지 정숙자 2021. 6. 16. 01:23

<권두언>

 

    단장취의斷章取義의 각색

 

    강기옥/ 본지 편집주간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

 

 

  단장취의斷章取義는 남의 시문詩文 중에서 어느 한 구절만 인용하여 마음대로 자기의 뜻에 맞게 해석하는 일종의 견강부회牽强附會다. 억지 이론을 끌어들여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견강부회는 단장취의 가장 적절한 방법일 수 있다.

  요즘의 단장취의는 언론이 앞서 보도하고 있어 식상하게 한다. 상대방을 칭찬하거나 수긍하는 말은 하나도 없고 오직 자기가 최고라는 자화자찬의 낯내기 일색이다. 이들의 단장취의는 말꼬리 잡기와 같은 싸움으로 품격이 없다. 언어를 통해 그 순간의 효과만 발휘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정치판의 언어는 작은 실수라도 사활을 건 승부수로 작용한다. 그래서 후당後唐시대의 풍도馮道는 상사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는 처세로 오조팔성십일군五祖八姓十壹君의 전설 같은 실화를 남겼다. 평균수명이 짧은 당시에 73세의 세수를 누렸으니 가히 언어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 五祖八姓十壹君은 다섯 왕조에 걸쳐 여덟 성씨를 가진 열한 명의 임금을 섬겼다는 뜻이다.

 

 

  훌륭한 언어는 위대한 인물을 만든다. 고대에도 말을 잘 해야 지도자가 되었듯이 현대에도 말을 잘 해야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그들은 언어를 매개로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군림하는가 하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민주적인 지도자로 존경받기도 한다. 히틀러가 그 오만한 달변으로 독일 국민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데 비하여 케네디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미국의 자존심을 세웠다. 히틀러의 언어를 선동적 언어라 하면 케네디의 언어는 자존의 위력을 지녔다. 어떤 언어에 매료되느냐는 그 시대적 분위기와 그에 편승한 민중의 선택이다.

 

  언어는 분명 무력보다 무섭고 효과적이다. 민심을 움직이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무력을 사용하면 두려움에 피동적으로 움직이지만, 좋은 언어를 사용하면 감성에 젖은 민중의 자발적 참여가 뒤따른다. 그것이 언어의 상승효과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대화 중에 독설을 사용하면 갈수록 더 심한 독설을 내뱉어야 한다. 상대방보다 더 센 말발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폭력과 같은 극한 상황을 초래한다. 부정적 의미의 상승효과다. 언어는 긍정적인 의미의 상승효과를 나타낸 때 평화롭다. 사회가 아무리 험악해지더라도 지도자라면 고운 말로 분위기를 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통해서 도를 깨치는 것을 무정설법無情說法이라 한다.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가 여상의 고승 상총常聰 선사를 찾았다. 선사는 동파에게 유정설법有情說法만 들으려하지 말고 무정설법을 들으라고 충고했다.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막막한 소동파는 무정설법이 무엇인지 궁리하며 산천을 헤맸다. 그런 중에 계곡의 물소리를 들었다. 물소리를 내는 주변의 자연도 보았다. 순간 무릎을 치며 '개울 물소리는 곧 장광설이요, 산빛이 청청란 법신'이라는 오도송을 남겼다. 개울의 물소리를 통해 법문을 듣고, 주변을 이룬 산과 나무들이 청정한 법신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희열을 어떻게 후학들에게 전할지 걱정하는 법열法悅에 이르렀다.

  요즈음엔 무정설법이 없다. 귀로 듣고 눈에 보이는 실체적 언어에서 현상을 구하려 하는 유정설법이 판을 친다. 언어 속에 숨은 은근한 맛을 오히려 허물이 되어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시문詩文의 한 부분만 취하여 제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것만 단장취의斷章取義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 중에서 어느 한 부분을 꼬투리 잡아 공격하는 것도 단장취의다. 굳이 직설적 표현으로 바꾸면 단언취의斷言取義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설법을 터득하는 것이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는 지름길이다. 문인들은 좋은 글과 언어로 사회 언어의 교정에 책임감을 느껴야 할 시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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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온문학』 2021-여름(28)호 <권두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