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떼를 지키는 사람 48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 47세)
내 집의 가장 높은 창문에서
흰 손수건을 들고 안녕이라 말한다
인류에게로 떠나는 나의 시들에게.
나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것이 내 시들의 갈 길.
난 그것들을 썼고, 모두에게 보여 줘야 한다
왜냐하면 그 반대로는 할 수 없으니까
마치 꽃이 자기 색깔을 숨길 수 없듯이,
강이 흐르는 것을 숨길 수 없고,
나무가 열매 맺는 걸 숨길 수 없듯이.
저기 이미 멀리서, 마차를 타고 가듯 가 버리는데
나는 마치 몸의 통증처럼
나도 모를 안타까움을 느낀다.
저것들이 누구에게 읽힐지 누가 알랴?
저것들이 누구 손에 닿을지 누가 알랴?
꽃, 나는 보여지기 위하여 내 운명에게 꺾였다.
나무, 내 열매들은 입에 먹히기 위해 따졌다.
강, 내 물은 내 안에 머무를 운명이 아니었다.
나는 몸을 내맡기고는 거의 기쁘다시피 한다.
슬프기도 지친 사람마냥 그렇게 거의 기쁘게.
가 버리길, 내게서 가 버리길!
나무는 떄가 지나면 자연으로 흩어진다.
꽃은 시들고 그 가루만 영원히 남는다.
강은 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그 물은 언제나 스스로로 남는다.
우주처럼, 나는 지나가고 또 머무른다
(p. 91-95)
<※ 블로그주: 포르투갈어-원문은 책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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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시인선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에서, 2018. 10. 5. 1판 1쇄/ 2020. 1. 10. 1판 7쇄 <민음사> 펴냄
* 페르난두 페소아/ 포르투갈의 모더니즘을 이끈 대표 시인. 헤럴드 블룸은 서양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 26인 가운데 셰익스피어, 괴테, 조이스, 네루다와 더불어 페르난두 페소아를 꼽는다. 일생 동안 70개를 웃도는 이명異名 및 문학적 인물들을 창조하고 독창적인 글을 썼다. 포르투갈어와 영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 및 서로 다른 문체를 구사하였으며, 시, 소설, 희곡, 평론, 산문 등 많은 글을 남겼다./ 1988년 리스본에서 태어난 페소아는 일찍 친아버지를 잃고, 외교관인 새아버지와 함께 가족 모두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주했다. 1905년 홀로 고향으로 돌아와 리스본대학교에 입학했으나 곧 학업을 중단하였다. 일생을 마칠 때까지 '무역회사의 해외 통신원'으로 무역 서신을 번역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평생 여러 잡지와 신문을 통해 다량의 산문과 시를 발표했으나, 생전에 출간한 포르투갈어 저서는 시집 『메시지』가 유일하다./ 1915년 포르투갈 모더니즘 문학의 시초인 잡지 『오르페우』를 창간했다. 오랫동안 틈틈이 적은 단상을 모아 『불안의 책』을 출간하려 했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1935년 47세의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엄청난 양의 글이 담긴 트렁크가 발견되었고, 현재까지도 분류와 출판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 김한민/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리피데스에게』 『혜성을 닮은 방』 『공간의 요정』 『그림 여행을 권함』 『책섬』 『카페 림보』 『비수기의 전문가들』 『아무튼 비건』 『사뿐사뿐 따삐르』『웅고와 분홍돌고래』 등의 책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으로 페루에 파견되어 학생들을 가르쳤고, 독일에서 작가 활동을 하다가 귀국해 계간지 『엔분의 일(n/1)』편집장으로 일했다. 포르투갈 포르투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했고, 리스본 고등사회과학연구원(ISCTE) 박사과정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산문집 『페소아와 페소아들』, 시선집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를 엮고 옮겼으며, 페소아와 그의 문학, 그리고 그가 살았던 리스본에 관한 책 『페소아: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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