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의 제물이 된 시인 아폴리네르(발췌)
정과리
아주 오래 전 1348~1350년 사이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사망케 한 '흑사병'이 페트라르카(Petrarca)의 연인 로르(Laure)를 집어 삼켰다면, 기욤 아폴리네르(프랑스 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 38세)는 그 자신이 외계 악령의 손에 멱살이 잡혔다. 1918년 11월 9일, 그의 나이 38세였고, 그의 마지막 시집 『칼리그람』이 출판된 지 6개월 후였으며, 그가 쓴 초현실주의 드라마 『티레지아스의 유방(Mamelles)』이 책으로 출판된 지 10개월 후였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날아온 포탄 파편이 그의 철모를 관통해 뇌를 뚫은 지(1916. 3. 17.) 2년 6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그는 '스페인 독감(grippe espagnole)'으로 죽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멍석을 깐 것은 전쟁이었다.
그는 원하지 않는 자식으로 태어나 40년 가까이를 생계의 터전에서 고생하다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때마다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그는 도색소설을 썼다가 체포되었었고(1906),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도난사건의 용의자로 상태(Sante) 감옥에 수감되었었다(1911))프랑스의 군대에서 장교가 되려 했고 국적을 신청하였으며, 그걸 취득한 날(1916. 3. 9.)로부터 겨우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포탄을 맞았다. 그는 그가 열정을 바친 고장에서, 그가 같은 해 10월 펴낼 시집 제목 그대로 『살해당한 시인(Le poete assassine)』이었다. 이 제목은 철환을 얻어맞은 대가로 정신을 차려서 저주의 심정으로 쓴 게 아니다. 그해 2월 출판을 알아보고 있었을 때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 제목을 쓴 것은 그가 자신의 처지를 명료히 꿰뚫어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포탄을 맞기 사흘 전, 그 때의 연인 마들렌느 파제스(Madeleine Pages)에게 전선에 투입됨을 알리고 전 소유물을 유증했었다.(시인의 생애에 대해서는 플레이아드 총서의 「연보Chronologie」를 참조했다. Guillaume Apollinaire, oe uvres poetiques - Textes etablis, presentes et par Marcel Adema et Michel Decaudin (coii.: pleiade), Paris: Gallimard, 1965, Llll-LXXV.)
그렇다면 그를 살해한 것은 스페인 독감이며, 전쟁이고, 정부政府였다. 저마다 명분이 달라 보이는 세 가지 악령에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들이 '편견'으로 먹고 산다는 것이며, 편견의 동력은 지독하게 높은 감염성이다. 실로 감염병이 돌 때 더 무서운 것은 잘못된 믿음들의 전파력이다. 이럴 때일수록 소통은 곱절로 필요하니, 단 우리는 소통의 정교한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이런 윤리학과 무관하게 나는 여전히 아폴리네르의 불우했던 운명에 가슴이 저린다. 그의 친구 피카소가 누린 지복은 시인을 철저히 비켜 갔다. 함께 가난 속에서 출발했으나 한 사람은 사회적이고 예술적이며 심지어 사후적인 것까지 포함해 모든 행운을 독차지했다. 마치 제로섬 게임이나 되는 듯 친구에게 줄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비유의 마법사였고 피카소의 입체 그림 못지않게 뛰어난 3차원의(더 나아가 4차원의) 언어 조형물을 설치하는 재주를 피울 줄 알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시를 이해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전히 그가 이룬 것만큼 음미되지 않고 있다. 나는 그의 시로 박사 논문을 쓴 어떤 이름 있는 문학평론가의 번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시의 질감이 전혀 살아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전공자의 손에 놓인 그의 시는 여전히 난해한 운석 같았다. 나는 지금 그를 비난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아폴리네르의 시가 까다롭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의 심장부에 진입하지 못할 때 서투른 번역이 나오고 마는 것은 나도 빈번히 경험하는 일이다.
다행히 우리는 그의 시에 대한 뛰어난 번역자를 만난다. 이규현은 『알코올』이라는 제목으로 두 권의 번역 시집을 냈는데, 하나는 아폴리네르가 1913년에 출간한 제목 그대로의 시집(기욤 아폴리네르, 『알코올 Alcoos』, 이규현 옮김 (coll.: 대산세계문학총서 No. 6), 문학과지성사, 2001)이고 다른 하나는 시 모음집(기욤 아폴리네르, 『알코올』, 이규현 옮김, 솔, 1995)이다. 이 시집 말미에 번역자는 '해설'을 붙이는데, 거기에는 시인 소개는 소략하거나 분석에 녹아 있다. 대개 분석과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의 분석은 정교하고 해석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는 아폴리네르가 근본적으로 두 겹 이상의 시인, 즉 격렬한 내면의 고통을 웃는 얼굴로 바꾸어 깊은 생체험의 우물을 비치게 할 줄 아는 시인이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섬세한 이해에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그의 번역이 정확하고도 유려한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 중 한 편, 「비수에 찔린 비둘기와 분수(La colombe poignarde et jet d'eau)」를 그의 번역으로 읽어 본다. (※원문(캘리그램으로 수록 됨)은 책에서 읽기 바람(블로그주))
비수에 찔린 다정스런 형상들 꽃핀 사랑하는 입술들 미아 마레이 이예트, 로리 애니 그리고 그대 마리 너희들은 어디에 있는가 오 아가씨들이여 그러나 눈물짓고 기도하는 분수 곁에서 저 비둘기는 넋을 잃고 있다
옛날의 모든 추억이
오 전쟁터로 떠난 내 친구들이여
창공을 향해 솟아오르고
그대들의 시선이 잠자는 물속으로
우울하게 사라진다
브라코와 막스 자콥
새벽 같은 잿빛 눈의 드랭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레날 빌리 달리즈는 어디 있는가?
그 이름들이 우울하게 울린다
교회 안에서 발자욱 소리가 울리듯
참전한 크렘니츠는 어디 있는가
아마 그들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내 영혼은 추억으로 가득하다
분수가 내 고통 위로 눈물짓는다
북쪽 전쟁터로 떠난 이들이 지금 싸우고 있다
땅거미가 내린다 오 핏빛 바다여
월계수 장미 전쟁의 꽃이 철철 피 흘리는 동산
-(Guillaume Apollinaire, 알코올, 이규현 옮김 (coll.: 세계시인선 No. 17), 서울: 솔, 1995, 224-227쪽)
아폴리네르가 죽기 전에 출간한 글자그림시집, 혹은 그림글자시집, 『칼리그람』에 수록된 시이다. 이 시의 뜻은 어렵지 않다. 비수에 찔린 비둘기는 시인 자신을 가리킨다. 비둘기 모양의 형상으로 씌어진 첫째 연에 나오는 여인들의 이름은 시인을 스쳐 지나간, 그를 버린 여인들이다. 두 번째 연에 나오는 친구들은 시인과 비슷하게 희생당한 가녀린 영혼들을 가리킨다.
그 세파를 아폴리네르는 "월계수 장미 전쟁"이라고 분명히 썼다. 그들은 전쟁의 제물들이었던 것이다. 첫 연의 추억 속의 여인들은 그의 가슴에 비수를 박고 떠났다. 그는 슬픈 심사를 분수에 투영한다. 분수는 눈물짓고 기도한다. 그런데 마음을 투사하니, 시인의 몸이 남는다. 비수에 찔린 비둘기의 몸, 그 비둘기는 그런데 "넋을 잃고 있다(s'extasie)." 이 부분은 번역자가 그의 뛰어난 번역 중에 남겨 놓은 희귀한 모호성의 장소다. 아마도 번역자는 당혹스런 표현에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동사는 '무아경에 빠진다'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넋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바로 '분수에!'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분수가 어쨌길래? 이 분수 모양을 하고 있는 글자들이 위 번역에서 제 2연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친구들의 불우한 운명이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화자는 그 불우를 추억하며 '우울'에 빠져든다. 그렇다면 우울에 빠진다는 뜻인가? 이런 해석은 엉뚱하고 성급하다. 그게 아니다. 그림을 잘 보라. 분수가 솟구치고 있다. 첫 연에서 분수가 "눈물짓는다"라고 표현한 건 일종의 트릭이다. 분수는 눈물짓는 것처럼 보인다(당연히 물이 나오니까). 그러나 눈물짓는 게 아니다. 이렇게 표현해야 한다. "분수에서 눈물이 솟구친다"라고. 이 말은 곧바로 "피눈물이 솟는다"라는 우리말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 지금 시의 화자는 분수 모양을 그림으로써 우울을 피눈물로 솟구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물론 일차적인 방법론은 글자를 그림으로 만든 상태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허구를 만드는 방법론이고 그 허구의 진실성을 보장하진 못한다. 후자는 어디에 있는가? 그림을 잘 보라. 맨 밑바닥에 부릅뜬 눈이 있지 않은가? 피눈물을 흘리는 눈은 동시에 부릅뜬 눈이다. 부릅떴기 때문에 '눈물 젖지' 않고 눈물을 뿜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과 프로이트가 잘 알려주었듯이, 우울의 근본 원인은 사태의 책임자를 자신에게 두고자 하는 강박에 있다. 놀랍게도 시인은 그 책임을 이행하는 실행까지 그 강박에 두었다. 즉 우울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면, 즉 자신이 원인이라면 자신의 못남을 떨쳐 버리는 것도 자신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울을 떨쳐 다른 행동으로 이월시킬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부릅떠서 세상을 향해 눈길을 돌리는 무의식 밑바닥으로부터 솟아나 크게 확대된 눈이다. 눈동자까지 또렷하게 박혀서, 광원을 만드는 눈. 세상의 칼에 찔린 자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불의 눈인 것이다. 그러니 제목은 '비수에 찔린 비둘기'를 말하고 있지만, 그 비둘기가 그의 피눈물, 즉 불타는 눈으로 세상을 찌를 기세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1연의 교묘한 또 다른 트릭도 눈여겨봐야 한다. "비수에 찔린 다정스런 형상들"이라고 첫 시구에 적혀 있다. 세심한 독자는 이 구절이 제목과 어긋나 있음에 의아해 한다. 단수와 복수가 다르고, 저 "다정스런 형상들"은 시인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이어지는 "꽃핀 사랑하는 입술들"과 연관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제목과 다음 시구를 함께 이어서 생각하면, 이 "다정스런 형상들"은 시인(화자)과 여인들과의 사랑(들)이 비수에 찔렸다는 것을 가리킨다. 찔린 건 시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세상에 '부드러움'을 입혀줄 사랑의 형상들이 상처받은 것이다. (p. 6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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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2020-4월호 <기획연재 37/ 정과리의 시의 숲속으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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