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신원철_죽은 아내 실비아 플라스에게...(발췌)/ 탁자 : 테드 휴즈

검지 정숙자 2020. 6. 21. 13:36

 

 

    탁자

 

    테드 휴즈(1930-1998, 68세)

 

 

  나는 당신에게 단단한 책상을 하나 짜주고 싶었소

  평생 쓸 수 있는 놈으로.

  2인치 두께의 느릅나무 판자를 샀는데,

  그 가장자리의 한쪽 편으로 거친 나무껍질이 물결을 이루고 있는,

  관 짜기 용으로 대충 잘라놓은 것이었소. 관 짜기 용 느릅나무는

  시체를 받아 세상의 물에 띄움으로써

  새 생명을 갖게 되는 것. 그건 너도밤나무, 물푸레나무나 소나무보다는

  죽은 자로 하여금 좀 더 긴 항해를 할 수 있게 보호하는 것이요.

  판자 하나로 나는 당신의 영감을 위해

  완벽한 착륙패드를 만든 것이었소. 그런데 나는

  사실 문 한 짝, 당신 아버지의 무덤을 향해 열린 문짝을

  만들어 붙이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었소.

 

  당신은 매일 아침 네스카페 한잔 만들어 들고

  그 위에서 허리를 굽히고 행복해했소,

  싱싱한 공기의 냄새를 맡으며

  그것의 아픔에도 귀를 기울이며

  마침내 딱 먹기 좋은 풀을 찾아내는 동물처럼 말이요. 당신이

  펜을 달리면서 그 느릅나무 속에서 그것을 열 수 있는 말을

  알아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소. 믿을 수 없었지만

  나는 환한 대낮에 당신의 아버지가

  살아나서 일어나는 것을 보았소,

  여전히 시간을 알리며

  당신의 모든 기억을 비인간화 시키는

  푸른 눈의 그 독일제 뻐꾹시계 말이요.

  그는 절룩거리며 솟아나

  우리 집으로 들어왔소. 나를 만지려 몸을 틀다가

  당신은 그를 보았소. ‘기다려, 기다려나는 말했소.

 

  이게 뭐지? 나의 이해력은

  그의 언어--내 인식파장의 바깥에 있는 독일어에 의해

  귀가 먹었소. 나는 거칠게

  더 깊은 잠 속으로 깨어 들어갔소. 그리고 잠자듯 걸었소

  마치 거울을 통해 대본을 읽는 배우처럼 말이요. 나는

  당신의 라이벌인 죽음의 숙녀를 포옹했소, 마치

  그 역이 내 눈꺼풀 위에 형광색 글자로

  씌어있는 것처럼. 당신이 두 팔로 그를 꽉 껴안게 한 채

  기뻐하며 그는 당신을 그 느릅나무

  문안으로 끌고 내려가 버렸소.

  그는 원하던 것을 얻었소.

  나는 기둥만 가득한 텅 빈 무대 위에서 깨어났소.

  조잡하게 칠해진 가면만 흩어져 있었소. 대본은

  찢어발겨져 흩어졌소. 그것의 암호는 뒤범벅이 되었소

  깨어져 흩어진 거울의 앞면과 뒷면처럼 말이요.

   -전문, 테드 휴즈의 『생일편지』에서/ 신원철 역

 

 

  죽은 아내 실비아 플라스에게 바치는 초혼의 노래 『생일 편지』 (발췌) _ 신원철/ 시인, 영문학자

  훤한 대낮에 장인이 살아서 책상 위로 올라온다. 플라스의 모든 기억을 인격화하여 장인이 살아나온 것이다. 푸른 눈의 독일 뻐꾸기시계와 같은 성격의 그는 절룩거리며 집안으로 들어와 그 둘 사이에 끼어든다는 것이다. 플라스(1932-1963, 30) 그를 알아보지만 불길한 느낌을 받은 휴즈가 아내를 제지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좀 추측하기 힘든 상황인데, 그는 더 깊은 잠으로 뻐져들며 몽유병 환자처럼 장인의 각본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즉 정신 차려서 제지하고 싶지만 그의 몸은 움직이지 않고 플라스는 장인의 의도대로 꿈결처럼 따라간다는 것인데, 이 점은 실제로 플라스의 시에서도 제시된 바가 있다. 그만큼 그녀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존재는 거대하였으며 휴즈는 그에 대해서 일종의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플라스는 나름대로 결혼생활이 불만스러울수록 과거의 기억으로 빠져들었다. 가령,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플라스의 「나자로 부인」에서까지 철저하게 시화되어 있는데, 그녀에게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떨치기 힘든 악몽이었다.

  마침내 플라스와 휴즈에게 파국이 닥친다. 1962년 휴즈는 이웃에 살던 아씨아 위빌이라는 여자와 불륜에 빠진 것이다. 휴즈 부부와 위빌 부부는 "1960년부터 불륜의 관계를 눈치 채고" 있었는데 마침내 위태위태하던 일이 터진 것이다. 1962년 1월에 아들 니콜라스 페라를 출산하고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플라스의 분노는 어마어마하였고, 10월부터 별거에 들어가 아이 둘을 데리고 런던으로 이주하였다. 그녀가 런던의 작은 집에서 두 어린아이들과 허덕이고 있을 때 휴즈는 위빌과 함께 있었다. 플라스는 자신의 분노와 원한을 「아버지」에서 표출하며 남편을 "일 년 동안 내 피를 빨아 마신" 흡혈귀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후기 걸작들을 쏟아내었다. 당시 그녀의 마음과 정신을 지배히고 있던 것은 남편에 대한 분노였으며, 비평가 알바레즈가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보통은 단단하게 감아올려져 있던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직발로 드리워진 채 짐승과 같은 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고 회상하였다.

  하지만 플라스와 휴즈에게 찾아온 파국의 원인을 어느 한쪽의 부정이나 부도덕, 혹은 결벽증으로 몰고 가는 것은 좀 위험한 듯하다. 이들의 결혼생활에는 양자가 모두 혼합되어 있다고 비난을 받았지만 그 오랜 세월을 한마디도 변명하지 않고 묵묵히 견뎠던 그가 이 시집을 통해서 나름대로의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가 보기에 예민했던 플라스는 남편의 외도를 견딜 수 없었고 자해를 하면서 복수하고자 했던 것이다. (p. 시 313-314 / 론 31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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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함께』 2020-여름호 <영미시 이야기>에서

  * 신원철/ 시인, 영문학자, 시집 『동양하숙』 『닥터 존슨』외, 저 『20세기 영미시인 순례-죽은 영웅의 시대를 노래함』 외 다수의 논문, 강원대 글로벌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