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리온도
정숙자
아직 죽음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이리저리 배치하네. 죽음에 관한
미로도 가꾸어내네. 겹겹으로 죽음에 포위된 자는 죽음은커녕 삶에 대해서조
차 한마디 못하고 마네. 이런 게 바로 말할 수 없는 것인가, 침묵해야 되는 것인
가, 아니 그게 아니라 침묵이 급습― 덮쳐버리는 게 아닌가. 아무 색도 아닌 시
간이 떠내려가네.
꽃 잃고 잎 지우는 바위
눈뜨고 말 묻고
외로 나앉아버리는 바위
아직 죽음과 떨어져 있을 땐 그도 죽음 세포를 사변적 논리적 미학적으로 성
찰했었네. 그런데 불과 일 년 사이 피붙이 셋씩이나 뜨고 보면 열쇠 꾸러미 뚝
떨어진대도 무슨 언어를 꺼낼 수 있으리오. 이렇게까지 사라지는 건가, 기호네
파토스네 전위네 신경을 자극하던 그 모든 선들이 저렇게까지 사건지평선에
나포되어 버리다니.
*『시와 표현』2013-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