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정숙자
지현 엄마가 진료 받을 동안 지현을 봐주기로 짰다. 비치된 잡
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지현의 기분을 살리려고 아양피우는 나.
…계속 사막이 펼쳐진다. “히야, 또 사막이네!” 별난 목소리로 장
황설을 늘어놓지만 지현의 표정 역시 사막의 선분을 유지할 뿐, 초
록빛이 돌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2006년생. 키 82㎝. 몸무게 12㎏.
아예 돌아서서 창 밖을 바라보는 지현.
“어? 일 이 삼 있다!” 느닷없이 기쁨에 찬 목소리. 옳지, 주차구
간 표시를 읽은 것이다. 이해 못할 바 아니다. 31개월짜리에게 사막
보다 1 2 3이 감동적인 건 당연한 일. 그러나 지현에게도 인생은 인
생. 기쁨이란 쉬이 지나가는 것. 더 이상 읽을 것도 볼거리도 없자
원위치로 돌아앉았다.
나 : 이제 볼 게 없지?
지현 : 상상으로 보면 모든 걸 볼 수 있어.
한 방에 나가떨어진 나. 그렇지만 즐거움에 가득 찬 나. 내가 지
현을 봐주는 게 아니라 지현이 나를 위로하는 꼴이다. 뭔가 보답해
야겠다고 맘먹은 나는, 지현의 동의 아래「백설공주 이야기」를 세
세히 들려주었다. 동화의 대단원에 이르러 지현에게 물었다. “지현
아, 너도 결혼할 거야?” “응”
“누구랑 할 건데?”
“도날드 덕!”
졌다. 또 한 방에 나가떨어진 나. 그렇지만 즐거움에 가득 찬
나. 정말 내가 지현을 봐준 게 아니라 지현이 나를 굴렸다. 지현에
게 아직 사막은 없다. 지현 엄마의 어금니 한 개가 온전히 금으로
입혀질 동안 지현과 나는 참으로 새하얀 이빨을 깠다. 내 딸 지현
엄마에게 나는 고주파 스펙트럼을 안겼다. “축하한다.”
*『문학청춘』창간호 2009.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