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성혁_시간에 대한 시적 사유들(발췌)/ 나는 가벼워지고 싶었다 : 허만하

검지 정숙자 2024. 9. 7. 16:54

 

    나는 가벼워지고 싶었다

 

     하만하

 

 

  느닷없이 가벼워지고 싶었다. 나는

  

  가벼워진 잎사귀들은

  무리 지어 광활한 가을의 품 안에서 흩어지는 바람의 허전함이 된다.

 

  황갈색 가랑잎들은 멋대로 썰렁한 하늘을 헤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곡률대로 휘어지는 비탈 면 따라 움직이는 정확한 기하학적 질서다.

 

  멀리 하늘 끝 지긋이 노려보며, 나는 저물녘이 서서히 농도를 찾아, 내 몸 안에 피처럼 번지는 것을 느끼며,

  내 몸을 떠나 빈 하늘 끝 헤치고 싶은 내 손바닥 한 자의 비어 있는 무게를 펼쳐본다.

 

  어느덧 나의 실체는 두 팔 치켜들고 겨울 사상 중심에 서서 광물처럼 황량해지고 있는, 잎 진 한 그루 나무 회초리 끝 명석한 바람소리였다.

     -전문 『시사사』, 2024-봄(117)

 

  시간에 대한 시적 사유들(발췌)_이성혁/ 문학평론가

  자연의 '곡률'을 따를 때가 어쩌면 가장 자유로운 때인지 모른다. 이에 따른다면, 자연의 질서에서 벗어날 때 자유롭다는 생각은 단견이다. 그 벗어남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사에 의한 삶의 속박으로 곧장 전화되곤 하기 때문이다. 저 가랑잎처럼 가벼워지고 싶다는 시인의 말은, 자연의 질서에 올라탐으로써 인간사에 속박된 삶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욕망, 그럼으로써 "하늘 끝 헤치"며 남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을 말해준다. 하여 그는 "내 손바닥 한 자의 비어 있는 무게"마저 하늘을 향해 풀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보듯이, 이를 통해 '나의 실체'가 '어느덧' 무엇이 되었는지 그는 깨닫게 된다. 그의 실체는 무엇이 되었다는 것인가, 육체    "광물처럼 황량해지고 있는, 잎 진 한 그루 나무"로 존재하는    의 가장 끝자락을 지나가는 "명석한 바람소리"가 되었다는 것. 그것은 생명을 다 하고 있는 육체와 육체를 떠나는 영혼 사이의 경계 지대에 존재하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무엇은 육체와 영혼이 뒤섞이며 존재하며 혼성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명석하게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 마지막 연은 허만하 시인의 여전히 명징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적 인식을 보여준다. (p. 시 184-185/ 론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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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4-여름(90)호 <계간시평> 에서

  * 허만하/ 1932년 경북 대구 출생, 1957년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海潮』(1969),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1999)등, 산문집『부드러운 시론』(1992), 『모딜리아니의 눈』(1997), 일역 시선집『銅店驛』(일본 紫陽社, 1980)

  * 이성혁/ 문학평론가, 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 저서『불꽃과 트임』『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서정시와 실재』 『미래의 시를 향하여사랑은 왜 가능한가』 『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건역사』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