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病 속의 편지 외 1편
김건영
누군가 신호를 적어 놓았다 문제가 있습니다 몸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있다 기호를 받아들이면서 이별이 늘어나요 늘어납니다 잊어버린 것들이
아픈 사람이 가득하다 복도는 하얗다 꺼지지 않는다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것들은 잃어버릴 예정입니다 더 이상 골목에 불이 꺼진 창문을 세지 않는다 잠든 사람들과 빈집이 구분되지 않는다 병원病原이라 부를까
병상에서 쉬는 것은 몸속의 병이겠지 편안한 병 아픈 사람들은 속이 빈 것처럼 바람 소리를 낸다 병은 투명하고 단단하다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입을 꾹 닫고 있다 기호는 스스로 도착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름을 알게 되면 나아지는 것이 있습니까 농담은 자주 미끄러진다 병 속의 편지를 아시나요 병 속의 기호를 꺼내 읽는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의미 없는 말들을 하면서 의미를 더듬고 있다 어째서 슬픔은 성공적으로 도착하고 마는가
꽃들은 잎들은 보고 있으면 자라지 않는다 봄이 오면 잎들을 보러 가요 헐벗은 나무들의 이름을 확인하러 가요 그것을 읽어 보고 싶군요
-전문(p.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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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ll
뛰어넘고 싶다
없는 공간에서 없는 널 떠올리면
(문학이)
없음
이 있다 아직 없는 책을
지금 쓰고 있다
널, 나를 삼켜도 좋다
이를 위해 살을 찌웠으니
대신 한 사람 덜 먹으면
널, 다른
이가 없으면 이 몸으로 세상을 덮겠다
널
없는 공간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었을까
서류처럼
널
부른다
상상이 부서진 이름이여
하염없이 없는 것이
하염없이 불타 없어질(문학은)
널
가진 후
내 이름은 도난, 방진이죠
수준 이하 하루치의 우울
없는 대지와
없는 공간에
도착이 도착하지 않는다
머릿속이 비어 있는데
세라도 놓을까
널
음식도 마음도
식기만을 기다린다
Null을 담기 위해
헐벗은 나무를 씻기는
비를
따뜻하다 해야 하나
차갑다 해야 하나
질문은
널, 써서 채운다
(문학을)
시그
널은 없다
(문학에서)
나를 짚어 줄 손이 없는 밤에
빈 몸이 떨리고 있다
없는 책責이 손에 잡힌다
없는 말을 손끝으로 한다
귀가 멀어지고 있다
-전문(p. 8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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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널』에서/ 2024. 8. 10. <파란> 펴냄
* 김건영/ 200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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