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경첩/ 정우신

검지 정숙자 2024. 7. 21. 12:58

 

  경첩

 

  정우신

 

 

  느지막이, 나비를 따라서 간다. 나비가 담장에 앉아 날개를 몇 번 부딪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내가 부채로 무심코 바람을 일으킬 때 누군가 우산을 버스에 두고 내리는 것. 바이올린이 끝나지 않았는데 박수가 터져 나오는 것.

 

  커튼을 열었다가

  젖히면

  봄이 올 때도 있고

  하늘을 보며

 

  골목을 걸으면 하늘을 보는 사람과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분리수거를 먼저 하고 지난 달력을 넘길까. 물건을 정리하고 줄넘기를 할까. 요즘엔 심장에서 초침 소리가 들린다. 강아지 장난감 건전지를 바꿔 본다. 몇 번이나 짖어야 조용해질까.

 

  인형에

  눈빛이 돌아서

  밤을 새우고

  책상에 앉아

  고무를 자르면

 

  등이 열리고 나비 떼가 쏟아진다. 나는 공벌레를 좋아한다. 꿈이라기엔 장면이 느리고 추운데 소똥과 지푸라기 냄새가 난다. 사람들 서 있거나 앉아 있고 까마귀 총총거린다. 여기까지 왔으면 무언가 보여야 하는데 전방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정원이다. 마음에 드는 의자가 없어서 계속 걷는다.

 

  장면 속으로 들어와서

  할 수 있는 일은

  지하철을 찾거나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찾아

  떨어지는 것

 

  대문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건 네가 아니라 컵과 접시. 음료와 음식. 음악과 음복. 나비가 어떻게 우리 집 선반에 앉아 있는지. 공원을 두 바퀴 돌고 오면 없고 한 바퀴를 더 돌면 난간에 앉아 있는 그 나비. 소나무에 등을 부딪치며 손바닥을 친다.

 

  자, 꽃잎을 열었다 닫는 것부터

  다시 배워 봅시다

     -전문(p. 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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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4-봄(32)호 <poem>에서

  * 정우신/ 201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비금속 소년』『홍콩 정원』『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