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背景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姿勢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落葉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전문, (첫 시집 『어떤 개인 날』, 中央文化史, 1961)
▶미래에서 올 '아름다운 영혼'의 빛살(발췌) _이찬/ 문학평론가
시인 황동규는 「즐거운 편지」를 등단작으로 내놓았던 1958년에도 청년이었지만, 지금-여기, 2024년 봄에도 언제나 늘 한결같은 청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영원한 지금'의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내 기다림의 자세"를 자기 성찰의 회로 속에서 되새기면서 매 순간 "거듭남"을 이행할 수 있는 자리, '영원한 지금'을 이루려는 의욕으로 가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참된 시인이란 언제나 늘 "변화"의 과정을 이행하려는, "거듭남"의 현재진행형을 살아가는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동규 시 마디마디에 깃든 활발발活潑潑의 생생하고 아름다운 탄력, '영원한 지금'의 생명력이 "기다림"에서 오는 까닭 또한 이와 같다. 그에게 "기다림"이란 영원히 종결되지 않을 '형이상학적 그리움'일 수밖에 없기에. 아니, '자아 성장'을 끊임없이 추동하는 정신의 도약대이자, 결코 가닿을 수 없을 영원한 '불가능' 그 자체일 것이 틀림없기에. (p. 시 115/ 론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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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 2024-봄(32)호 <serial 文質彬彬> 에서
* 이찬/ 2007년《서울신문》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저서『현대 한국문학의 지도와 성좌들』『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시론의 계보』『김동리 문학의 반근대주의』, 문학비평집『헤르메스의 문장들』『시/몸의 향연』『감응의 빛살』『사건들의 예지』, 문화비평집『신성한 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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