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켜보는 동안 개는 들판 여기저기를 뛰어다닌다
브라네 모제티치/ 김목인 譯
내가 지켜보는 동안 개는 여기저기를 뛰어다닌다. 이따금 킁킁대고는 다시 달린다. 원을 그리며 가서. 주로 두더지 언덕들 주위에서 냄새를 맡더니. 곧장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나는 내 주머니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에 산만해진다. 곧 갈게요. 뭐하고 계세요? 저명한 여성 시인이 묻는다. 독서 중인가요? 집필 중? 공원이 아마 멋지겠죠. 아뇨, 아뇨, 나는 당황한다. 두더지 언덕들을 보고 있어요······ 저의 개가 그 속에 코를 들이밀어서요. 오, 정말요? 전 작업 중이실 거라 생각했어요. 알겠어요, 끝나면 전화할게요. 개는 이제 가장 큰 언덕부터 시작해 킁킁거리며 맹렬히 땅을 판다. 나는 총명한 시를 쓰기에는 너무 멍청하다. 나는 개에게로 달려간다. 녀석이 너무 몰입하고 있기에. 소리를 지르지만 녀석은 신경조차 안 쓴다. 나는 녀석을 끌어낸 다음, 두더지들의 세계로 이어지는 굴 옆에 무릎을 끓어 본다. 개가 이미 한 마리를 죽였다. 그 뒤에, 누군가 공포에 질려 나무껍질을 모으는 중인데, 자기 책을 만들고 있는 작은 두더지 시인이다. 그는 책을 더 깊숙이 끌고 갈 것이다, 땅 속으로, 거기서 책을 묶을 것이고, 이제 책은 수천 개 땅굴들을 통해 중앙 두더지 도서관으로 향할 것이다. 이미 역사가 수백만 권의 책들로 기록된 곳. 난 미소 짓는다. 다시 한번 내 주머니가 진동한다. 하는 수 없지. 난 일어나, 자리를 뜬다, 개는 날 지켜보다
가, 내가 몸을 돌리자, 자신이 잔해들을 파괴하도록 허락받았다는 것을 알아챈다.
브라네 모제티치, 『시시한 말』(김목인 역, 움직씨, 2023)
▶두더지 언덕으로 산 만들기(부분)_정한아/ 시인
아무 심오한 것이 없어서 마음에 든다. 그렇다고 의미 없는 일기에 그치는 것도 아니라서 더 마음에 든다. 이 시에는 제목이 없고(위 제목은 블로그에서 -부득이 임의로- 붙였음), 이 시가 들어 있는 시집에 실린 다른 시들도 제목이 없다. 그러나 이 시는 나를 현장에 데려간다. 그는 개를 산책시키려 나갔고(아니면 자기가 산책하고 싶어 개를 데리고 나갔고), 그의 개는 본능에 충실하게 재미난 것에 마음이 쏠린다. 그가 무엇을 피하고 싶어 산책을 나갔는지 모르겠지만 "저명한 여성 시인"이 속한 전화기 저편의 세계에 그다지 흥미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전화기 저편의 다른 많은 시람들처럼, 자기도 시인이면서, 시인에 대한 흔한 오해를 하고 있다. "독서 중인가요? 집필 중?" 그가 공원에 있으니, 그건 분명 시가 될 '멋진' 것일 거라 지레짐작한다. 그러나 그는 개의 시선을 따라 두더지 언덕을 보고 있는 중이다. 두더지 언덕 따위가 대체 무어란 말이지.
그는 전화기 저편의 세계보다는 개의 편에 가깝다. 개는 두더지가 이미 파 놓은 굴을 자기식으로 킁킁거리며 맹렬히 파서 두더지 굴을 망쳐 놓는다. 개는 반성 같은 것은 할 줄 모르고, 흥미로운 것에 코를 들이밀고 파헤칠 따름이다. 그리고 돌연,모제티치는 말한다. "나는 총명한 시를 쓰기에는 너무 멍청하다." 연갈이도, 행갈이도 없이 끼어드는 이 문장은 마음속에서 돌연 솟구쳐 나오는 간헐천 물줄기 같다. 어느 문장 사이에서라도 튀어나오려 준비하고 있었던 것만 같다. 이 문장 다음부터 개는 시인과 구별이 안 된다. "나는 개에게로 달려간다. 녀석이 너무 몰입하고 있기에. 소리를 지르지만 녀석은 신경조차 안 쓴다." 전화기 저편으로부터 호출이 왔지만 응하고 있지 않은 그처럼, 녀석은 자기 관심사에만 몰입해 있다.
녀석은 이미 사고를 친 후이다. 개는 두더지 굴을 파헤치다가 이미 한 마리를 죽였다. 개의 입장에서라면, 흥미로운 일에 따르는 '부수적인 피해'에 불과한 그 일이, 두더지에게는 갑작스런 재앙이다. "그 뒤에, 누군가 공포에 질려 나무껍질을 모으는 중인데, 자기 책을 만들고 있는 작은 두더지 시인이다." 갑자기 이 일상적인 공원 산책에 관한 짧은 시는 우화가 되고, 그것도 시인들에 대한 우화가 된다. 이 "두더지 시인"은, 죽은 동료를 장사지낼 수도 없고, 개와 맞서 싸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모제티치에게 이 "두더지 시인"은, 현실에선 아무것도 못하면서 공포에 질린 채 시집을 엮고, 그 책을 도서관에 집어넣는 것 이상은 생각지 못하는 둘도 없는 겁쟁이다. "그는 책을 더 깊숙이 끌고 갈 것이다, 땅속으로, 거기서 책을 묶을 것이고, 이제 책은 수천 개 땅굴들을 통해 중앙 두더지 도서관으로 향할 것이다. 이미 역사가 수백만 권의 책들로 기록된 곳." 책들의 판테온에 책 하나를 더 얹으려고 벌벌 떨면서 나무껍질을 모으고 있는 "두더지 시인"을 보면서 시인은 "미소 짓는다." (p. 시 5/ 론 5-6)
* 브라네 모제티치/ 1958년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출생(블로그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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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4-봄(32)호 <essay/ 내가 훔치고 싶은 시 한 편>에서
* 정한아/ 2006년 『현대시』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시집 『어른스런 입맞춤』『울프 노트』, 시산문집『왼손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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