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무거워
공동묘지 앞을 지나며
이영춘
생들이 흙속에 누워 있다 피안의 언덕 그 무덤 속에
무덤 속에서 저마다 알 수 없는 방언을 쏟아낸다
'생은 무거워, 무거워' 중얼거리는 소리 바람을 타고 건너온다
오백 년 전 세世, 사라진 내가 안개로 피어올라 무덤을 쓰다듬는다
간헐적인 숨결처럼, 파리한 눈물처럼 무덤들이 하얗게 흔들린다
'박제가 된 천재를 아시오'와 같은 박제들이
박새 같은 울음소리를 낸다 허공으로 하얗게 부서지는 날개
알약을 삼킨 생, 세상을 등진 생, 강물에 뛰어든 생,
빗물로 흐느낀다
박제 속에서 박제를 해부하면서
생이 무거워, 너무 무거워, 가쁜 숨 몰아쉬면서
흙무덤 속으로 간다
그 무덤 위로 스러지는 구름 한 점
-전문(p.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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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현실』 2023-여름(92)호 <이 계절의 시인/ 신작시> 에서
* 이영춘/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시시포스의 돌』『시간의 옆구리』『봉평 장날』『노자의 무덤을 가다』『따뜻한 편지』『오늘은 같은 길을 세 번 걸었다』『그 뼈가 아파서 울었다』, 시선집『들풀』『오줌발, 별꽃무늬』, 번역시집『해, 저 붉은 얼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