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
원원사지 동 삼층석탑
박금성
그는, 바람과 구름이었으나
소원의 흔적
오로지, 하나의 소원
더 나아갈 수 없는 곳을 향하여
쩡쩡, 땡볕을 가르며
오르는 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층층이 쌓이는 셀 수 없는 갈등과
선명해지는 사랑들
그럴수록 굳게 다듬어지는 불퇴전의 결연
그는 구름처럼 지워지고
바람처럼 잊혔어도
운명이 나아갈 수 없는 곳에서
눈과 손이 멈추어야 할 곳에서
탑의 수연에 마음을 가두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의 소원이
더 높이 오를 듯 하늘이 파랗게 열리는데
무명에 탑신의 옥개가 떨어져 나가고
벽력에 옥신이 흔들려도
오르고 오를 듯 원력을 다시 세우는데
그래, 활화산이 탑을 덮친들
그의 소원이 끊기겠느냐
미래가 다하여 세상이 멸한들
그의 원력이 멈추겠느냐
밤을 달리는 어둠이여!
낮을 달리는 빛이여!
불멸의 소원이여!
-전문(p. 194-195)
---------------
* 『시현실』 2023-여름(92)호 <이 계절의 시인/ 신작시> 에서
* 박금성/ 2020년 계간『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웃는 연습』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은 무거워/ 이영춘 (2) | 2024.07.20 |
---|---|
첫닭/ 박만진 (0) | 2024.07.20 |
봄밤/ 함태숙 (0) | 2024.07.19 |
아무도 없는 몸/ 정병근 (0) | 2024.07.19 |
납작하다는 말/ 이현 (0) | 202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