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탑/ 박금성

검지 정숙자 2024. 7. 20. 01:11

 

   

         원원사지 동 삼층석탑

 

    박금성

 

 

  그는, 바람과 구름이었으나

  소원의 흔적

 

  오로지, 하나의 소원

  더 나아갈 수 없는 곳을 향하여

  쩡쩡, 땡볕을 가르며

  오르는 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층층이 쌓이는 셀 수 없는 갈등과

  선명해지는 사랑들

  그럴수록 굳게 다듬어지는 불퇴전의 결연

 

  그는 구름처럼 지워지고

  바람처럼 잊혔어도

  운명이 나아갈 수 없는 곳에서

  눈과 손이 멈추어야 할 곳에서

  탑의 수연에 마음을 가두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의 소원이

  더 높이 오를 듯 하늘이 파랗게 열리는데

 

  무명에 탑신의 옥개가 떨어져 나가고

  벽력에 옥신이 흔들려도

  오르고 오를 듯 원력을 다시 세우는데

 

  그래, 활화산이 탑을 덮친들

  그의 소원이 끊기겠느냐

  미래가 다하여 세상이 멸한들

  그의 원력이 멈추겠느냐

 

  밤을 달리는 어둠이여!

  낮을 달리는 빛이여!

  불멸의 소원이여!

    -전문(p. 19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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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현실』 2023-여름(92)호 <이 계절의 시인/ 신작시> 에서  

* 박금성/ 2020 계간『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웃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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