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납작하다는 말/ 이현

검지 정숙자 2024. 7. 19. 17:46

 

    납작하다는 말

 

     이현

 

 

  겨울눈 내리는 날 엄마는 수제비를 끓였다

  반죽을 얇게 펴야 맛있는 수제비가 뜬단다

  얼기설기 묵은지 잘라넣은 펄펄 끓는 물에

  하얗고 평평한 조약돌 같은 수제비가 떠오르면

  어두운 강가에 나가 남몰래 물수제비를 띄웠다

 

  그래, 납작하다는 말 생각하면 참 슬프다

  각지고 모난 것들 얇게 펴는 그런 일

  눈도 코도 입도 있는 듯 없는 듯

  해저 연체동물처럼 뼈도 없이 납작하게 아, 평평하게

  바람 부는 세상 위로 부유하며 떠가는 그런 일

 

  엄마는 떠나고 몸살기 드는 겨울 저녁

  묵은지 잘라 넣은 물 위에 뜬 수제비 먹는다

  살아가기 위해 습관처럼 착하게 아, 비겁하게

  기울어진 세상 눈 감고 모난 생각 부러 누르고

  어둠 내린 허공에 목숨 하나 걸치고 떠가는 그런 일

 

  그래, 납작하게 펄럭이는 수제비 한술씩 떠먹는 일

  돌이켜 보면 낮은 바닥으로 평평하게 나이 들어가는 일이다

     -전문(p.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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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현실』 2023-여름(92)호 <신작시> 에서  

* 이현/ 2021년 계간『다시올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행성으로 떠도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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