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몸
정병근
혼자는 언제든 상하기 쉬운 자세로
뒤통수에 깍지를 끼거나 다리를 턴다
발톱이 자라고 털이 우거진다
비밀 하나를 공유할 때
우리는 겨우 신뢰할 수 있다
태어나서 죽는 생은 정해져 있어서
당신의 정면은 회피하기 좋다
시간은 무수한 측면으로 쪼개지다가
등을 남기며 사라진다
버려지는 관심 밖에서 증오가 자라고
몸은 절벽 앞에 선 자세로
터무니없는 적의를 불태운다
숭고한 원수가 온다
아무 것도 안 하는
말없는 말들이 수북이 쌓인 구석엔
먹고 흘리고 닦은 것들이 불룩하다
인간은 나무에서 내려온 혼자
여럿의 눈을 벗어난 몸 하나가
어둠 속을 배회하다가
무언가를 줍거나 툭 던지고 사라진다
-전문(p. 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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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현실』 2023-여름(92)호 <신작시> 에서
* 정병근/ 1988년 계간 『불교문학』으로 등단, 시집 『오래 전에 죽은 적이 있다』『번개를 치다』『태양의 족보』『눈과 도끼』『중얼거리는 사람』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