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be good. See you tomorrow. I love you. 외 1편
이효영
오늘도 혼자 대형마트에 갔습니다 빈 새장 하나를 샀습니다
1.
진열장마다 가득한
세상의 모든 입술
어제 본 것들과 불쑥 돌출된 것들
많을수록 좋습니가 내일이 만개합니다
차곡차곡 장식된 나의 새장들이
천장 높이 퍼덕이고
언젠가 진짜
한 쌍의 노란 새 가지겠지만
나는 다시 만날 약속을 해 봅니다
내일 보자 그렇게
말하는 중입니다
2.
어떤 유머도 아름다운 노래를 이길 순 없겠지요
그래도 새장의 창살은
건치健齒 같아 좋습니다 고르고 건강한 날들
호두가 사탕인 줄 알고 빨아 대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알맹이 사르르 녹아들 순간을 기다리다
나는 어른의 목청을 가졌습니다
목울대처럼 불거진 껍데기
초조한 저녁 산처럼 울컥
호두를 통째로 삼켜 버렸더랬지요
그때부터 나는 켁켁
기침을 멈출 줄 모르고
나의 인사는 선병질적입니다
그래요 당신 내일 또
또
보겠지요
내일을 향해 잠들면 꿈속은 뼈처럼 치밀합니다 나의 시선은 크고 아름다운 줄기
끝에 닿는 것들이 모두 말캉합니다 미래는 부드러워
세상의 모든 혀들이 일제히
화들짝 뿜어집니다 축구장의 두루마리 휴지처럼
목청을 뚫고 나오는 호두나무 나의 밤을 채웁니다
개금발을 한 듯 밤은 한 키 더 솟습니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새장이 열리고 고른 창살의 음계로 바람이 스칩니다 먼 약속을 짊어지는 호두나무
3.
내일도 안녕한 당신
내가 피워 낸 발화를 만지며
당신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전문(p. 21-23)
* You be good. See you tomorrow. I love you. : 앵무새 알렉스가 죽기 전에 한 마지막 말. 알렉스는 현재까지 연구된 앵무새 중 지능이 가장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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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소대장님
잘 지내시는지요 이젠 울지 않겠지요 물론 저도 달라졌습니다 민간인입니다 송구하게도 벌써 당신 얼굴이 가물가물합니다 일그러진 표정만 군번처럼 기억합니다 나는 더블백을 메고 전방을 오른 막내 손톱을 뜯던 청년이었죠 그러나 당신이라고 뭐 달랐을까요 푸른 견장 별 차이도 없을 또래 우두머리 되어 그저 열심이었던 거지요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더 열심히 걸어간 거겠지요 동북단 가파른 철책 당신을 따르며 죽도록 쫓으며 나는 쓰러지고 토악질을 했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울먹였죠 당신은 갓 부임한 인자한 간부 조금만 참으라고 적응할 거라고 자신을 믿고 따르라고 말했지만 들리지 않았어요 그러나 제겐 당신뿐인걸요 소대장님 왜? 소대장님 왜? 왜?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뭐? 제발 저 먼저 가게 해 주십시오 걸을 때마다 무언가 잡아당깁니다 뒤에서 저를 잡는다 말입니다 줄줄이 늘어선 누런 경계등 암울한 길의 놀라운 윤곽 사람 없는 소리가 철책을 흔들었어요 포복처럼 필사적으로 바닥처럼 황망하게 멀어지는 불안 등덜미를 잡았습니다 자꾸 당겨 돌아보면 어지러운 낙차 당신도 어쩔 수 없었겠지요 있습니다 내 뒤에 우리 뒤에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래, 너? 왜 그러냐고? 미친 거야? 미쳤냐고? 당신은 그때 울었어요 울고 말았지요 기나긴 철책을 무시하며 경계는 우리를 쉽게 넘어가는걸······ 더 이상 진실도 거짓도 아닌 무엇을 보지 않습니다 이제 민간인이고 예비군이고 거짓도 진실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열심히 앞서가던 당신의 의무 뒤돌아봐야만 하는 참혹한 책임 저는 사회에서 당신의 눈물을 떠올립니다 보고 싶은 소대장님 이 글이 어린 날의 위문편지 같으면 좋겠습니다 마주하지 않아도 발을 맞추지 않아도 경계에 선 누군가 안녕하기를 울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실입니다
-전문(p. 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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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당신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에서/ 2022. 10. 20. <파란> 펴냄
* 이효영/ 1982년 서울 출생, 『계간파란』 2023-겨울(31)호/ isseu_비등단 시인에 소개됨, 부천대학교와 서울예술대학교 졸업, 현재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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