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선미장식의 계단/ 이효영

검지 정숙자 2024. 7. 8. 19:59

 

    선미장식의 계단

 

     이효영

 

 

  가파른 계단을 내려올 때, 나, 나 불현듯 깊다. 실체보다 무겁거나, 실체보다 빠르다. 계단을 타고 있지만, 계단보다 조금 더 앞이다. 쏠리는 각도는 전부, 갈무리하는 나,

 

  가파른 계단을 내려올 때, 나, 비를 맞고 있는 것만 같다. 비의 한가운데 혹은, 비 자체로서 나, 다 떨어지지 못했다. 하늘과 땅 사이, 천둥의 한 점 발현과, 만물의 진동 사이, 그사이, 아니 비를 맞는 것이 아니라, 비의 메커니즘을 맞고 있는, 나,

 

  실체보다 전진, 실체보다 전위, 실체보다 첨예, 가파른 계단을 내려올 때, 나는 최고로 섬세하다, 콧날이 살아 있다, 슉 슉 슉, 각도의 숨찬 소리도 들려, 고집스레, 비에서 쏟아지는 비처럼, 나를 뚫고, 나를 덮는, 나,

 

  가파른 계단을 내려올 때, 나, 계단을 이기며, 조금 더 가파르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무수한 쉼표들로 호흡을 분절시키는 이 시는 형태적 측면에서 이미 모종의 혼란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는 불확정적인 주체의 자기 반영이면서 존재의 분열을 이미지화한다. 파국의 예감으로 충만한 이 시의 시적 주체인 '나'는 어디에서 대상인 '나'를 응시하는가. 기실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는 행위 주체로서의 '나'를 응시하는 시적 주체 '나'의 위치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끊임없이 겹치며 반복되는 공간이 점유하는 실정성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며, 칸트의 사유를 경유하여 말하자면, 인간의 감각기관에 포착된 대상으로서의 현상은 본질의 세계로 가는 통로와 같아서 감각과 그것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험을 통해서만 참된 삶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행위 주체인 '나'는 응시 주체이자 인식 주체인 '나'의 감각 너머를 구분하는 일은 불필요하다. 그럼에도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인식주체인 '내'가 포착한 행위 주체인 '나'의 위태로움 때문이다. 이효영 시인의 시적 주체는 빈 공간이 지닌 낯선 두려움을 익숙한 장소로 치환하여 사건화하면서 그 불일치의 기분을 통해 위태로운 풍경으로 환기한다. (···)

  그런 점에서 「선미장식의 계단」의 '나'는 끊임없이 "가파른 계단"을 감당하는 존재로 재현되며 의미화된다. '나'는 "불현듯 깊"고, "실체보다 무겁거나", "빠르"며, "전진", "전위","첨예'의 지위로 "계단보다 조금 더 앞"에서 "계단을 이기며" 가파른 상태에 놓인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비를 맞고 있는 것만 같"지만, "비의 한가운데 혹은, 비 자체로서" "다 떨어지지 못"한 상태로 "하늘과 땅 사이, 천둥의 한 점 발현과, 만물의 진동 사이"에 자리한다. 이런저런 의미들로 자신을 정체화하지만 기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계단'의 어느 공간도 점유하지 못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는 행위가 멈추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것도 이 그이유 때문이다. (p. 시 27/ 론 134-135) <이병국/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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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당신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에서/ 2022. 10. 20. <파란> 펴냄

* 이효/ 1982년 서울 출생, 『계간파란』 2023-겨울(31)/ isseu_비등단 시인에 소개됨, 부천대학교와 서울예술대학교 졸업, 현재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