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저녁이라는 말들/ 김육수

검지 정숙자 2024. 7. 10. 01:27

 

    저녁이라는 말들

 

    김육수

 

 

  숲속에 걸친 빛들은 물러가고

  어둠이 채워지는 산길로

  저녁이라는 말들이 길게 드리운다

 

  산모퉁이에 자그마한 집 굴뚝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환했던 낮과 저녁 사이에 태어난 말들,

  그 수련한 말들은 허공의 빈 의자를 찾아간다

 

  산 그림자가 지워진 저녁 하늘

  풀벌레 울음소리가

  오두막에 쉬고 있는

  한낮의 말들을 지우고

  저녁이라는 말들이 울고 있다

 

  어깨를 다독이는 달빛을 품고

  소로小路로 가는 상처 난 영혼들

  걷는 발걸음 소리조차 부담스러워

  바람길 따라 침묵 속에 간다

 

  아직은 밤이라고 말할 수 없는

  물렁물렁한 저녁의 말들이

  허공의 빈 의자를 채우고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김육수의 첫 시집 시편들을 독서하면서 느끼는 건, 단순하고 소박한 심상들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편들을 관류하고 있는 소박함 외에도 낭만적인 정조와 밤하늘의 별을 사랑하는 방랑자의 발걸음도 들린다. '소박한 것은 위대하다'라는 것을 증명한 시인이 19세기의 프랑스 시인 프랑시스 잠(1868-1938, 70세)이다. 그는 시인 윤동주와 백석이 사랑한 시인이다. 프랑시스 잠은 사소한 유정물과 무정물에도 '영혼'을 불어넣고, 그들을 위대하게 웅변했다.

      *

  「저녁이라는 말들」은 동양시론에서 언급하는 시화일률詩畵一律을 소환한다. 이 시를 보면, 저녁의 정취와 심상을 노래하고 있는데,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소리 없는 시가 되는 걸 경험한다.

  "숲속에 걸친 빛들은 물러가고"라는 평이한 진술을 통해 해가 저물며 어둠이 깔리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그린다. 이때 "저녁이라는 말들이 길게 드리운다"라는 표현은 저녁이라는 실체의 기의를 넘어서, '저녁이라는 말' 자체의 기표를 만나면서, 길게 드리운다는 말이, 그러한 말들이 저녁의 감정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시각적인 형상화를 통해, 하루의 끝자락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길이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p. 시 86-87/ 론 88 · 92) <김영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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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저녁이라는 말들』에서/ 2024. 6. 27. <황금알> 펴냄

* 김육수/ 강원 고성 출생, 2023년 『문학청춘』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