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전해수_결별(訣別)의 역설(발췌)/ 훗날의 꿈 : 박완호

검지 정숙자 2024. 6. 27. 03:06

 

    훗날의 꿈

 

     박완호

 

 

  지나간 훗날을 더는 꿈꾸지 않으리

  한 손가락 굽은 여자의

  하나뿐인 아들로 태어나지 않으리

  그녀의 순한 눈망울을 닮거나 물려받지 않으리

  오월 햇살같이 다사로운,

  엄마라는 발음의

  나보다 어려지는 한 사람을 품지 않으리

  슬픔의,

  아무 데서나 엇갈리는 걸음을 재촉하거나

  꿈꾸지 못하는 밤을 책처럼 쌓아두지 않으리

  문밖 살구나무 아래를 서성이는

  자국 없는 발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리

  제대로 늙어보지도 못한 아버지

  깜깜한 물소리 끼고 산등성이로 향하는

  마지막 걸음을 그대로 두지 않으리

  서러운 꿈의 궤적을 비껴가는

  어떤 내일도 돌이키지 않으리

        -전문-

 

  결별訣別의 '역사 읽기(발췌)_전해수/ 문학평론가

  시 「훗날의 꿈」은 결별 이전을 꿈꿔보는 시인의 이픈 과거에 대한 되새김질이다. 위 시에는 함축된 사연이 깊다. 시인은 엄마라는 "나보다 어려지는 한 사람을 품"는 일과 "제대로 늙어보지도 못한 아버지"의 "마지막 걸음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과, 이외에도 "한 손가락이 굽은 여자의 하나뿐인 아들"로는 다시 태어나지 않으리라는, 다 지나간 과거의 아픔과 미련과 뉘우침과 원망을 구체적으로 발설한다. 이 "지나간 훗날"은 꿈조차 꿀 수 없는 단장斷腸의 이별을 소환한다. 후회와 자책으로 점철된 많은 나날은 다 "지나간" 과거에 머물러 있다. 다시 못 올 "훗날"은 자주 "책처럼 꿈꾸지 못하는 밤"으로 쌓이고, "들리지 않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도 "서러운 꿈의 궤적"에 깊은  아쉬움을 남긴다. 지나간 그 "훗날"에는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있는, 없는, '꿈'이 된다.

  위 시에서 "지나간 훗날"의 꿈은 헛된 망상妄想에 가깝지만, 이는 꿈꾸는 자의 절실함, 기대조차 갖지 못하는 꿈의 상실감으로, 시인의 곁에 오래 머물러 있다. 결국 "훗날의 꿈"은 결별에 대한 확인이며, 결별이 곤 시작始作인 시인의 꿈이 훗날의 만남을 부질없게도 기약할 수는 없기에, 이 꿈은 존재하지 못할 '꿈'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긴 하다. 세상의 모든 꿈은 지나간 훗날을 서성이게 하고, 그 꿈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기에 영원한 '꿈'이 되고 만다. (p. 시 174/ 론 18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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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4-여름(94)호 <신작 소시집/ 신작시/ 작품폰> 에서

   * 박완호/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문득 세상 전부가 되는 누군가처럼』『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 『너무 많은 당신』『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

   * 전해수/ 2005년 『문학선』으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목어와 낙타』『메타모포시스 시학』『푸자의 언어』등, 현) 상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