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차성환_기름과 돌봄의 능력, 그리고···(발췌)/ 나 안아줘 스님 : 고명재

검지 정숙자 2024. 6. 30. 02:03

 

    나 안아줘 스님

 

     고명재

 

 

  사진 속에는 완전히 깡마른 스님이 무릎 위에 아이를 앉히고 껴안고 있다 육체가 산산조각 나버린 이다 젊었으나 아팠고 병약했지만 그때 그 목소리는 산보다 파랬다 두 사람 다 정면을 보고 있다 사진 밖까지 한때의 눈빛이 닿는다 아이의 어깨는 어른의 양팔에 가려져 있고 편안한 듯 따스하게 감싸져 있다 어떠한 경우든 어른은 아이보다 체구가 크다 사랑은 그런 규모와 골격을 뜻한다

    -전문(p. 230)

 

  기름과 돌봄의 능력, 그리고 꽃이었던 시절/   고명재, 정빈 시인의 신작시에 붙여서(발췌)_차성환/ 시인 · 문학평론가

  '나'는 "완전히 깡마른 스님이 무릎 위에 아이를 앉히고 껴안고 있"는 "사진" 을 바라본다. 추측컨대 "사진 속"의 "아이"는 시인 자신일 것이다. "아이"가 "스님"의 품에 "편안한 듯 따스하게 감싸져 있"는 모습을 보고 "사랑"을 떠올린다. "사랑"은 다른 이를 안아줄 수 있는 넓은 품이 있어야 가능하다. '나'는 "사랑"의 형태를, 그 "규모와 골격"을 "스님"의 품에서 깨닫는다. 시인은 이미 "육체가 산산조각 나버린" "사진 속" "스님"을 생각한다. '내 양팔이 빛나는 능력'(「우리는 금보다 은이 어울리는 사람」)은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주었을 때 가능해진다. 그것이 시인이 "스님"에게 배운 사랑이다. 그 '사랑'은 누군가를 품에 안고 기르는 일이다. 그는 시의 언어로 누군가를 품을 수 있는 사랑의 자리를 마련한다. 그리고 그가 아는 사랑의 방식은 죽음을 넘어선다. (p. 시 230/ 론 24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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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3-겨울(94)호 <신진 조명/ 신작시/ 작품론> 에서

  * 고명재/ 200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산문집『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 차성환/ 2015년 『시작』으로 등단, 시집 『오늘은 오른손을 잃었다』, 연구서『멜랑콜리와 애도의 시학』, 앤솔로지 시집 『지구 밖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