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호텔
윤옥란
습한 계절
먹구름과 천둥소리가 지나가면
뒷산 산벚나무 열매들이 비바람에 떨어진다
이때부터 낡고 오래된 집의 동거가 시작된다
새벽 알람시계가 깊은 잠을 흔들어 깨울 때
재빠르게 침을 놓고 날아가는 모기 한 마리
귓가에 맴돌던 윙윙 소리
잠을 내쫓는 알람보다 매섭다
잠에서 깨면 이불 속에서 무언가 휙 빠져나갈 때도 있다
문단속을 아무리 잘 했어도 언제 들어왔는지
빗자루 찾는 사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는
수십 개의 발을 지닌 지네 한 마리와
긴 더듬이로 얼굴을 스치고 간 바퀴벌레는 한통속
벽이나 바닥으로 돌아다니는 돈벌레 뒤를 이어
순식간에 부엌으로 날아든 꽃매미가 날개를 접고 있다
우리 집 안팎이 숲이다
낡은 집을 호텔이라고 믿는 것일까
방문객이 점점 늘어난다
-전문(p.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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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4-여름(94)호 <신작시 2> 에서
* 윤옥란/ 2018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날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2015년 제3회 '암사동 유적 세계유산 등재기원 문학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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