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엊그제 일인 듯/ 조은설

검지 정숙자 2024. 6. 24. 01:13

 

    엊그제 일인 듯

 

     조은설

 

 

  누가 백악기 화면의 조리개를 열었을까

  잠깐 시간이 정지한 순간

  무채색의 기나긴 허공이 지나간다

 

  얇은 균열 속에 파묻힌

  또 다른 세상의 문이 열리는데

  빛이 환하게 쏟아진다

 

  시조새 한 마리 숲의 잔등에서 솟구쳐 올라

  허공에 꾹꾹 눌러 찍는

  마름모꼴의 발자국들

  휘파람을 불고 있다

 

  달의 갈비뼈 속에서

  덧니가 반짝이는 별들이 태어난다

  허공이 채워진다

  

  잇몸이 가려운 암모나이트

  사랑니가 돋는 계절

  모래 한 줌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물장구를 치고 있다

 

  조심조심 한 꺼풀씩

  백악기의 고요한 적막을 벗겨내면

  엊그제 일인 듯

  속절없이 밀려오는 둥근 그리움

 

  그림자 하나 스치듯 지나갔다

    -전문(p. 81-82)

  ----------------------

* 『미네르바』 2024  여름(94)호 <신작시 2> 에서

* 조은설/ 2012년『미네르바』로 등단,시집『천 개의 비번을 풀다』외 4권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곤충호텔/ 윤옥란  (0) 2024.06.24
갈치/ 최진자  (0) 2024.06.24
몽골의 향기 2/ 이채민  (0) 2024.06.23
노을/ 서철수  (0) 2024.06.23
초여름에/ 장충열  (0) 2024.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