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미안하다 미안하다 외 1편/ 이혜선

검지 정숙자 2024. 6. 11. 02:24

 

    미안하다 미안하다 외 1편

 

     이혜선

 

 

  딸을 팔고 백 원을 받은 그 엄마, 뛰어가 빵을 사와서 아이 입에 넣어주며 평생 배 곯린 게 마음 아파 '용서해라' 통곡했다지요 어떤 아이는 날마다 풀죽만 먹다가 생일날 아침 흰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그건 밥이 아니라고 '밥 달라' 울었다지요 풀죽을 밥으로 알고 사는 그 아이들, 풀죽도 못 먹어 맥없이 죽어가는 북녘 아이들,

 

  미안하다 미안하다 너무 많이 먹어서 배 나온 것 미안하다 살 빼려고 비지땀 흘리며 사우나에 들어앉아 미안하다 먹다가 내 배 부르다고 날마다 쓰레기통에 음식 버려 미안하다 같은 하늘 같은 핏줄 형제들 굶어 죽어도 모른 척해 미안하다 혼자만 뜨신 방에 단잠 자서 미안하다 달려가서 밥이며 약이며 쥐어주고 싶어도 가지 못해 미안하다 이유가 많아서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말만 해서 더 미안하다.

     -전문(p.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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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목이 자라난다

 

 

  타일랜드 치앙마이 북쪽 산간지방에서

  목이 긴 카렌족 여인을 만난 뒤로

  고개 돌릴 때마다 내 목에서 뚝 뚜둑 소리가 난다

 

  목이 길어야 미인이 된다고

  4.5㎏ 쇠줄로 목을 챙챙 감아올리고

  길어진 목을 빼고 앉아 색실로 베를 짜는 여인

 

  그녀가 섬세한 손가락을 놀릴 때마다

  목이 한 치씩 더 길어진다

  하늘의 무지개를 따와서 치마 앞에 펼쳐놓는 여인

 

  목뼈가 한 치씩 자랄 때마다 눈은 더욱 깊어져서

  1만 년 전 그녀 할머니 눈동자처럼

  우리 가슴속 응어리도 녹여낸다

  

  그녀의 눈 속에 빠진 뒤로

  오늘도 내 목에서 뚝 뚜둑 소리가 난다

 

  내 목이 한 치씩 자라난다

  내 눈이 한 치씩 깊어진다.

     -전문(p.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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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새소리 택배』에서/ 제1판 1쇄 2015. 8. 25./ 제1판 2쇄 2016. 12. 5. <문학아카데미> 펴냄

이혜선/ 경남 함안 출생, 1980~1981년 월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神 한 마리』『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등, 저서『문학과 꿈의 변용』『이혜선의 명시산책』『New Sprouts You』(영역시집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