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봄이었다 외 1편
김유섭
화장장은 새벽부터 붐볐다.
디편 산자락에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화로에 불이 붙으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울었다.
죽은 사람은 불 속에 말없이 누워 있었다.
상조회 사람이 "어머니 불났습닏. 어서 나오세요." 라고
소리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장밖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따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울음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시들해졌다.
사람이 타는 시간은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이라고 했다.
분쇄기 돌아가는 소리는 일 분이었다.
걸어온 발자국이라고 아니 어머니라고
뼛가루가 든 작은 나무상자를 끌어안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늦었다며 매장지로 가야 한다고
서두르는 몸짓들이 일렁거렸다.
진달래 구경가지고 어머니,
아침 햇살을 향해 아무렇지 않은 듯 불러보았다.
봄이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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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와 바람의 전언
바람이 신이다.
아니 모래가 신이다.
창조란 신의 것이라지만 바람과 모래만 남아 뒹굴고 있다.
살아 꿈틀거리던 색색 세포들, 모양도 체온도 그림자마저 먼지로 떠다닌다.
콘크리트 마한 제국은 실루엣으로 스쳐간
모래와 바람의 춤이었나.
사슴의 뿔이었던 모래알
들판에 이파리였던 바람
초록 오선지에서 흩어져 증발해버린 음표들이다.
멈춰버린 시간
녹아 날아가버린 날들
죽은 강바닥 위에 적막으로 흐른다.
무너지는 행성 궤도에
투명 탄소 뱉어내던 쓰러진 굴뚝 하나
플라스틱 안개에 휘감긴 채
눈을 껌벅이고 있다.
후이잉,
1억 년마다 한 번씩 신음을 뱉어낸다.
-전문(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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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비보이』에서/ 2024. 6. 5. <포지션> 펴냄
* 김유섭/ 2011년『서정시학』 시 부문 신인상 & 2014년 『수필미학』 평론 부문 신인상 수상, 시집『찬란한 봄날』『지구의 살점이 보이는 거리』, 평론서『이상 오감도 해석』『한국 현대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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