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인터뷰_ 문신수 소설가 : 문영하 시인>
나의 아버지, 이웃 문신수
문영하/ 시인
어렸을 때 주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자다가 눈을 뜨면 아버지는 책상 앞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글을 쓰곤 하셨다. 겨울밤 창호지 틈으로 스며들던, 앞산의 부엉이 소리가 처연하게 들렸다. 아버지의 글이 내면과 깊이 마주하면서 나온 고통의 산물임을 훗날 알게 되었다.
문영하_ 아버지, 떠나신 지 꼭 20년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평안하신지요?
문신수_ 참으로 잔잔한 시간을 보내고 있네. 모두 잘 있는가?
문영하_ 아버지는 남해에서 태어나 오로지 남해에 살면서 문학 활동을 하다가 가셨습니다. 아버지 등단 시절(1961년), 가까이에서 지켜봐 주셨던 어느 교장선생님께서 "뱀도 덤불이 있어야 나오는 법인데 문신수 자네는 어디서 나왔는고?" 이런 말씀을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문학과는 거리가 먼 메마른 환경에서 아버지 걸어오신 길이 궁금합니다.
문신수_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소설을 쓰고 싶었지. 그러나 작가가 되는 일은 내게 너무도 과분한 포부였네. 배울 곳도 물어볼 곳도 없으니 내가 내딛는 걸음은 모두가 첫길이었지. 이러니 나는 밤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지. 이렇게 써 낸 작품 하나가 중앙 문예지에 당선되었네. 1961년 7월 『자유문학自由文學』지에 「백타원白楕圓」이라는 단편소설이 빛을 보게 된 것이지. 어렵게 등단은 했으나 곧 『자유문학』이 폐간되는 바람에 발표할 곳마저 잃고 중앙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나는 문단의 고아가 되고 말았네. 그런 가운데 뜻있는 사람들 몇이 모여 1983년 봄, 남해문학회를 창립하였지. 남해문학회가 생김으로써 남해는 비로소 '남해의 문학'이라는 작은 등불을 켜게 되었네. 『남해문학』이 24집(2021년)까지 나왔으니 기쁘기 그지없네.
문영하_ 아버지께서 "마음은 학문이 필요하지 않은데 이 세상 모든 학문은 마음을 위한 학문이더구나."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문학이 바로 마음의 학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신수_ 문학이 바로 인간 수업이라는 신념으로 문학을 사랑했네. 가르치며 배우며 보낸 문단 경력 40년, 기껏해야 창작집 4권, 동화집, 수상집 등 통틀어 9권을 세상에 내놓았네. 부끄럽지만 나에게는 분외의 소득인지라 신명께 깊은 감사를 드렸네.
문영하_ 아버지가 가신 뒤에 있었던 반가운 소식 하나를 전합니다. 지역신문에 6년 6개월 동안 연재되었던 「문신수의 세상살이 토막말」이 다시 한 번 연재가 되었습니다. 2011년 단행본으로 묶어낸 『세상살이 토막말』의 발간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세상살이 토막말』 속에는 지극히 평범했던 한 사람이 비범하게 살아낸 세상살이가 온전히 들어앉아 있습니다. 곱씹어 읽다 보면 사람과 세상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진실과 성실을 무기로 삼아 물러섬 없이 살았던 선생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찾는 이들이 많아 책은 발간되자마자 2000권이 모두 나갔다고 합니다.
문신수_ 그랬던가 고마운 일이네.
문영하_ 아버지의 수필 「시나브로 작전과 한꺼번에 작전」을 읽으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세상은 아버지 계시던 20년 전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시나브로 방식이 통용될 수 있는지 여쭤봅니다.
문신수_ 시나브로 작전의 본보기는 꿀벌의 채밀활동이지. 꿀벌이 한 번 물어오는 꿀의 양은 소비巢脾에 점을 찍는 정도지만 날마다 점만 찍어 모은 것이 모르는 새 한 말, 두 말의 꿀이 되는 거지. 가장 확실한 것은 그날그날 얻어내는 조그만 보람을 쌓아 공든 탑을 만드는 거야. 이건 내 생명으로 쌓은 것이기에 나를 떠나지 않는 것이라네.
문영하_ 『부부 합창』 『석세 베에 열새 바느질』 『못다 부른 이름』 등이 작품에서는 아버지 삶의 모습이 깊이 배여 있어 읽을 때마다 가슴이 저립니다. 『꿈꾸는 겨울나무』에서는 일제 강점기의 상황을 어쩌면 그리도 소상하게 기술하셨는지요?
문신수_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었네. 기록하고 스크랩하는 것이 나의 습관 아니었나? 내가 건강을 잃어가며 반드시 그 글을 써야 했던 이유는 나라 잃은 설움을 절절이 경험했기 때문이지. 한 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 삶의 아픔과 슬픔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네. 기록에 공백이 생기면 개인도 민족도 시대도 다 망각 속으로 사라지거든. 그러므로 누군가 그 시대를 기록해야 하는데 이 작업이 펜을 든 자의 사명이기도 하지.
문영하_ 교직이라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에 작품 세계를 펼치는 데에 많은 제약을 받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신수_ 그렇지. 나는 이상한 결벽증이 있어서 스스로 만든 그 굴레를 쉬 벗어던지지 못했네. '아들, 딸, 며느리, 제자들에게 거리낌 없이 읽힐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시대를 증언하고 인도하며 오래 읽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늘 했네. 그래서 자연히 붓끝은 순수하고, 아름답고, 그립고 안타까운, 인간의 보편적 삶을 파고드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었지. 문학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우리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는 역할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네.
문영하_ 아버지는 갖은 악조건 속에서 소설가가 되셨고 저는 아버지의 토양 위에서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 내력을 생각해 봅니다.
문신수_ 문학성은 자네 할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 할아버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지.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없었던 긴 겨울밤, 동네 사람들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려 모여들었네. 할아버지는 야사野史나 옛날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놓기도 하고 구운몽이나 춘향전 같은 고대소설을 율을 지어 읽어주셨지.
문영하_ 어릴 적 잠들기 전에 아버지도 제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표정과 동작이 어찌나 재미나던지 지금도 그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등잔불 아래서 그림자놀이도 재미있었습니다. 낡은 벽지 위에 스물아홉 붉은 아버지 손이 여우가 되고, 새가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날개를 퍼덕였습니다. 제가 초등 1학년이었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바리캉을 사오셨지요. 아버지는 이발관에 가지 못하는 이웃 아이들과 어른들의 머리를 깎아주기도 했습니다. 출근 시간 전에 머리를 깎아 달라고 온 이웃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의 머리를 급하게 깎아주고 2㎞쯤 되는 학교를 지름길로 질러가는데, 오르막 산길이었습니다. 아버지 뒤를 따라가면서 저는 조잘조잘 온갖 질문을 했습니다. "아버지, 바람은 어디서 오나요?", "나무는 왜 이름을 나무라고 지었어요?" 이런 질문을 끝없이 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대답을 해 주시던 아버지께서 가쁜 숨을 내쉬며 "얘야, 이제 좀 그만해라."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아버지도 힘드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몹시 미안한 마음을 처음으로 경험하였습니다.
문신수_ 참 바쁘게 살다가 왔네. 그토록 물음이 많았던 자네는 문학의 길도, 교직도 내 길을 따라 왔네. 고맙네.
문영하_ 아버지께서 마을 사람들의 편지 대필을 많이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입대한 아들의 편지 답신과 소속 상관에게 잘 살펴 달라는 편지를 써 주셨던 것 같아요.
문신수_ 휴전이 된 지 10년 안팎이니 어수선했지. 시골이라 그 당시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네. 군대 간 아들의 편지가 오면 나에게 와서 답신을 부탁했지. 간절한 마음으로 답신을 써 주면 "어떻게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써 주었냐"며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했지.
문영하_ 제가 중학교 때의 일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버지께 편지를 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답신과 함께 제가 보낸 편지에 빨간색으로 맞춤법, 띄어쓰기, 어법에 맞지 않은 문장을 수정해서 동봉하셨습니다. 그때 제 편지를 다시 읽으며 몹시 부끄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편지를 쓸 때는 버릇처럼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썼지요.
문신수_ 그랬던가. 자주 만날 수 없으니 그렇게라도 아비의 소임을 다하고 싶었던 게지.
문영하_ 산처럼 늘 그 자리에 앉아 계시는 그리운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의 평안을 빌며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 놓으셨습니다. 마지막 떠 놓고 가신 정화수 뚜껑을 5남매는 세 번째 기일까지 열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 곁을 영영 떠나신 것을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산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죽은 고기는 물에 떠내려간다." 쩌렁쩌렁 아버지 목소리 들려옵니다. 부디 그곳에서 편안하십시오. (p. 274-278)
* 블로그주: 원본과 달리 띄어 쓴 행간은 눈(目)의 피로감을 줄이기 위한 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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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2-10월(644)호 <가상 인터뷰 / 문신수 소설가>에서
* 문영하/ 201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청동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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