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인터뷰] 이온겸의 문학방송/ 정숙자 시인편

검지 정숙자 2022. 8. 6. 01:00

 

      [인터뷰] 정숙자 시인편 제218회

    이온겸의 문학방송/ LIVE 2022. 8. 3. () 9

 

         - interviewer : 이온겸

         - interviewee : 정숙자

 

 

  [Q1] 정숙자 시인님 반갑습니다

  문학방송시청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 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1952년생 정숙자입니다.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했고요. 꾸준히 시 쓰고 있는 정숙자입니다.

 

  [Q2] 정숙자 시인님의 최근작공검 & 굴원을 만났는데요, 출간 축하드립니다. 공검 & 굴원을 출간하고 어떠한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지요?

 

  * 새 책이 나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발송 작업입니다. 저의 문학 인생에 직/간접적으로 도움 주신 분들께 올리는 예에 해당하죠. 그로 인해 좀 바빠집니다. 그 외에는 평소대로 책 읽고, 회답하고, 원고 쓰고, 블로그 운영 등 <혼자 바쁨>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Q3] 시인님의 시 고유 시간 첫 행에 열셋, 그때, 나는 미래를 팔아 시를 샀다라고 쓰여 있거든요.

 

  * 네, 열세 살, 그러니까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초등학교에는 없던 ‘특활’ 시간이 있었는데요, 문예반 친구들의 자작시 <문집>을 보는 순간, 거기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오빠는 장차 제가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셔서 학비를 대주시고 ‘간호 반’에도 들어가도록 안내하셨는데, 실망을 안겨드리고 말았습니다. 시의 바다에서 지금껏 파도를 타고 있으니까요.

 

  [Q4] 19884, <혜진서관>에서 출간한 하루에 한 번 밤을 주심은에서부터 최근 5월에 <미네르바>에서 출간한 10번째 시집 공검 & 굴원까지 각각 다른 시풍이 느껴지는데요, 이러한 시집이 나오기까지 시인님은 남다른 노력을 하시는 거로 알고 있어요.

 

  * 저는 서너 살 때 천연두를 앓는 과정에서, 고막의 손상을 입었는데요, 그 사실을 모르는 채 성인이 되었습니다. 잘 듣지 못하는 불행이 저를 ‘읽는’ 쪽으로 이끌지 않았나 싶어요. 한글을 깨치자마자 책을 붙들고 살았거든요. 신은 귀 대신 눈을 주신 듯합니다.

  남다르다고까지는 할 수 없을 듯하고요. 누구나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저는 그저 주어진 숙명에 맞추어 살다 보니 <열심히, 꾸준히, 끝까지>가 한 세트였던 듯합니다.

  10권의 시집에 그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고나 할까요. 개성은 그대로이지만, 표현의 형식은 계속 쇄신되고 있었음을 누가 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스펙트럼을 말이죠.

 

  [Q5] 첫 번째 시집에서부터 최근 출간된 공검 & 굴원까지 어떠한 시풍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들려주세요.

 

 * 1. 2. 3. 4 시집까지는 자연주의 시라고 봐야겠지요. 상황에 따라 떠오르는 심상을 그대로 옮겨 적는 식의, 즉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처럼요. 5. 6. 7 시집은 모더니티(modernity)에 접근한, 즉 상징주의의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고요, 다시 말해 시 한 편을 읽고 나면 지은이가 무엇을 말하려고 쓴 시였는가의 문제를 독자에게 맡기는 거죠. 그러니까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처럼 모두가 똑같이 해석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독자, 각자의 것’이 되는 겁니다. 8. 9. 10 시집은 구조주의에서 포스트 구조주의로까지 가파른 이론을 수용한 작품들입니다. 종횡무진 건너뜀도 심하고, 압축이나 모호성도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에 편안한 시에 익숙한 독자라면 낯설다는 느낌을 받게 될 텐데 그 점은 당연한 일입니다. 마치 산수 문제를 풀다가 갑자기 인수분해나 적분/미적분에 맞닥뜨린 느낌이랄까요? 제 책임이죠(ㅎㅎ). 그렇지만 예술에서 새로움을 시도하는 사람은 여타의 혹평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겠지요.

 

  [Q6] 공검 & 굴원은 동국문학상 수상작이 수록된 시집이기에 또 남다른 의미가 있을 거 같아요.

 

  * 이번 시집을 읽으신 몇몇 분은 너무 ‘어렵다’, ‘무겁다’, ‘어둡다’고 하시는데요, 그건 작품 속에 제 삶이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둥글넓적 고생도 안 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내면 풍경은 어렵고, 무겁고, 어두웠던 반증이 아닐까요?. 글이란 삶과 영혼의 기록이니까요. 이번 시집에 대한 감회는 <감사>입니다. 여기까지 오게 해 주신 데 대한 전능자에게, 그간 도움을 주신 분들과 사회, 자연과 가족, 시간과 공간에··· 숙명과 운명에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Q7] 여기서 잠깐 시인님의 육성으로 시 한 편 듣고 오겠습니다.

 

  * 이번 시집에서 가장 안 슬픈 시(ㅎㅎ), 3부의 ‘미망인’ 시리즈 중 ‘공무도주가公無渡酒歌’를 읽겠습니다.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나. ‘개그 콘서트’를 보는데 눈물이 나. ‘웃찾사’를 보는데도 눈물이 나. 슬프지도 않은데 막 눈물이 나. 주룩주룩 아무 생각도 안하는데 눈물이 나. 이 눈물이 뭔지 나도 몰라. 막을 수도 없고, 막고 싶지도 않고 그냥 눈을 뜨고 있는데 눈물이 나. 이러다 눈알이 쏟아져버리지 않을까싶게 눈물이 나. 언제 멎을지 알 수도 없고, 언제 또 터질지 알 수도 없는 피눈물이 나. 남들은 복이 터졌다고 위로전화 걸어오는데, 복 많은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고, 정말 정숙자는 복 터졌다고 말하는데 웃으며 전화를 끊고 나면 눈물이 나. 복이란 터지면 안 되는 거였나 봐. 복이 터지면 눈물도 함께 터지는 거였던가 봐. 누구라도 복이 터지면 눈물 날 거야. 복은 터지지 말고 잘 담겨 있어야 되는 거였어. ‘복 받았어’ 정도의 복이라면 좋았을 걸. 벗이여 부디 복 터지지 마. (좀 부족하더라도…) 터져버린 복은 다시는 꿰맞출 수 없어. ‘개그 콘서트’가 끝났는데도 눈물이 나. 이 눈물은 아무 의미가 없어.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나. 이 미친 눈물이 잠조차 밀어버리네. 밤이 익었는데도… 눈물이… 나.

  - 전문, 『공검 & 굴원』「공무도주가」( 2022. 미네르바) 

 

 

  [Q8] 시인님 잘 들었습니다, 이 시는 어떠한 계기로 쓰인 시편인지요?

 

  * 올해가 미망인 된 지 10주기인데요. 미망인은 절반은 죽은 사람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기에 ‘미망인 된 지 10년’이 아니라 ‘10주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ㅎㅎ). 그 후 살아보니까 미망인의 삶이란 게 그렇더군요! 진짜로! 저의 배우자는 만취 상태에서 계단에서 넘어져 깊고 먼 강을,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고대가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빌려 ‘공무도주가公無渡酒歌’를 쓰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도 백수광부白首狂夫가 술병을 쥔 채 강물을 건너고 있었다, 하니 원!

 

 [Q9] 서정주 선생님께서 문단에 등단시킨 마지막 제자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등단하게 되었는지요.

 

  * 저는 문단에 지인이 없었기 때문에 어렵사리 서점가에서 선생님의 주소를 알아냈지요. 그리고 첫 시집 원고 108편을 소포로 부치면서 서문을 써주십사는 편지를 동봉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 적힌 전화번호로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 그 후 선생님의 서문이 실린 시집 두 권(『하루에 한 번 밤을 주심은』 『그리워서』)이 잇달아 나왔고, 그 두 권의 시집으로 저의 앞날까지 진단하셨는지 “나는 그녀의 글을 보고 믿는 데가 있어, 그녀를 우리 詩의 한 좋은 實驗家로 크게 注目하는 바이다”라시며 추천도 해 주셨습니다. 어쩌면 그리도 정확하실까요? 머리에 함박눈 쌓인 지금도 ‘앰퍼샌드(ampersand) 기호’를 표제에 사용할 정도로 실험을 하고 있으니 말이에요(ㅎㅎ).

 

 [Q10] 특히 시인님은 보내준 시집을 읽고 꼭 손편지를 써서 회답해 주신다고 들었어요, 얼마 전에 방송 중 윤은영 시인께서도 말씀하셨는데, 받는 분들에게는 감동의 선물일 거 같아요, 어떠한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요?

 

  *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집안에 부쳐오는 소포나 편지 등의 회답 담당이었습니다. 아버님의 분부에 따른 것이었는데요, 나중에는 동네 할머니들의 편지까지도 대필했어요. 군대 간 손자나 외지에 돈 벌러 간 며느리에게 부치는 편지였죠. 그 외에도 다양한 편지를 대신 썼는데요, 그 모든 편지는 봉하기 전에 반드시 소리 내어 읽어드리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어쩌면 내 마음을 그대로 썼냐” 흡족해하시곤 했습니다. 그 어린 시절의 습관이 ‘회답은 안 하면 안 되는 것’으로 DNA가 된 듯해요. 뿐일까요? 쓴 편지를 즉시 부치지 않으면 안 되게끔 훈육되었지요.

 

  [Q11] 일생을 시인으로 살아온 정숙자 시인님의 마음과 시를 통하여 후배들은 삶을 배우고 있거든요.

 

  * 저에게 뭐 따로 배울만한 게 있을까요? 제가 후배 님들한테서 배워야 할 걸 찾아야겠지요.

 

  [Q12] 시인님의 블로그에 가면 시집마다 수록된 시편들은 물론이고요, 시집이 나온 후 후기까지 써 놓으셨더라고요, 이렇게까지 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어떠한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요?

 

  * 부쳐온 시집을 정독하고 편지까지 쓰고 나면, 읽은 시간과 그 시가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블로그에 수록하기 시작했는데 세월 따라 쌓이게 됐습니다. 블로그 운영도 처음부터 계획한 게 아니고, 저의 노트를 정리하는 심정이었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지금은 공유공간으로 넓어져 책임감마저 짐 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후기’를 쓰는 건 아니고 책에 실린 시의 작품론이나 해설의 주요 부분을 옮기는 것인데요, 그건 평론가에 대한 오마주(hommage)입니다. 시 못지않게 힘든 게 또한 평론이니까요.

 

  [Q13] 시인님은 산책을 하시면서 책도 읽으시는 거 같은데 산책하시면서 어떠한 생각을 하시는지요?

 

  * 산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2010년 교통사고 때 무릎을 다쳐서 매일 걷거나, 수영하거나, 헛-자전거를 타라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간편한 산책을 택했고, 매일 같은 길을 한두 시간 걸으려니 시간이 부족한 거예요. 부족할 뿐 아니라 그 시간에 독서를 하지 않으면 학인學人으로서의 생활이 펑크가 나버릴 지경이었죠. 이래저래 길이 독서대가 되었습니다. 집에서는 읽은 책들 노트해야지, 편지 써야지, 원고 쓰고, 살림도 해야 하고··· 독서에 집중이 안 돼요. 책을 들고 길에 나서면 다른 짓은 아예 못하니까 집중 효과도 만점이죠.

 

  [Q14] 사진을 보아서 알겠지만 시인님은 염색도 안 하시는 걸로 알아요, 이유가 있는지요?

 

  * 저는 강물이 흐릴까 봐 안 하는 거예요. 차마 못 하는 거죠. 저는 지구를 연인 & 애인처럼 사랑합니다. 제가 죽으면 지구의 품에 안겨 영원히 잠들게 될 것이고요!

 

  [Q15] 커피통이나 반찬통을 늘 갖고 다니시면서 잔반이나 커피 남은 거 갖고 가시는 걸로 아는데 시작하시게 된 계기라도 있는지요?

 

  * 그 역시 환경 보호, 지구 사랑의 일환입니다. 모두 애써 살아온 몸이고, 애써 만든 손길이지요. 상 위에 있던 음식을 남았다는 이유로, 바로 쓰레기 처리된다는 게 죄송스럽게 느껴지거든요. 사물을 의인화하며 시를 쓰다 보니 이제는 모든 사물이 인격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ㅎㅎ). 종이 한 장도, 물 한 컵도, 채소 한 잎도 지구의 일원으로서 각박한 이 세상에, 우리 곁에 살고 있었다는 게 대견하고 존경스럽고 애처롭습니다.

 

  [Q16] 이러한 시인님의 모습이 바로 후배들에게는 배움의 교과서라 말씀드리고 싶거든요, 시를 쓰는 후배들에게 시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좋은 말씀 남겨주세요.

 

  * 글쎄요, 딱히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요. 주위를 보면 다 열심히 하고 계시더라고요. 다만 저의 경험을 꺼내자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열심히, 꾸준히, 끝까지> 걸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 크게 욕심부리면 허해지기 쉽고, 너무 급히 서두르면 넘어지기 쉽고, 그렇다고 너무 느긋하면 멈추기 쉬우니까요.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이 있듯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평생을 가다 보면 만 리라도 지치지 않고 갈 수 있겠지요. “지치지 않는 자가 이기는 자다.” 저의 생각노트(밀리미터/밀리그램, 2003. 8. 30-12:56.)에 써놓은, 나 자신에게 들려줬던 얘기입니다.

 

  [Q17] 마지막으로 하지 못한 말씀이 있다면 남겨주세요~

 

  * 전에 없이 지독한 더위와 코로나로 힘든 이 여름 건강히 건너시고, 즐거운 나날 이어지시길 빕니다. 오늘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행운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

   [인터뷰] 정숙자 시인편 제218회

   이온겸의 문학방송/LIVE 2022. 8. 3. () 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