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돌의 환幻 / 이재훈

검지 정숙자 2012. 6. 1. 15:00

 

 

    돌의 환幻

 

     이재훈

 

 

  부러진 돌부리에 채인다

  굴러다니는 돌이 아니라

  올곧게 서 있다가, 부러진 돌

  창과 칼 혹은 바람이

  돌의 몸을 반 동강 냈을 것이다

  사방이 어둠이었고

  나를 길에 내던졌던 사람들의 눈빛만

  어둠 속에서 반짝하던 밤들이었을 때

  발바닥 돌덩이가 내 존재를 떠받칠 때가 있다

  돌이 내 집을 떠받치고,

  아버지의 약속을 떠받칠 때

  돌 위에 피의 흔적이 있다

  돌은 깨져도 죽지 않는다

  돌은 썩어갈 육체를 갖고 있지 않아

  언제나 채이고 밟히고 놀아난다

  돌에 의해 소멸한 것과 태어난 자리가 한 몸이 되는

  이 모든 찰나를 지켜본 돌

  어둠 속에서 세상이 어지럽게 돌기 시작하면

  나는 흔들거리는 운명을 본다

  흔적 없이 왔다간

  당신의 영혼에 몰래 깃들고 마는 돌

  부처의 얼굴도 만들고, 예수의, 마리아의 몸도 만드는

  성육신인 돌

  영원을 살고 있는 길 위의 돌

  돌로 만들어진 뭇사람 하나

  그 무성한 골짜기의 돌

 

  * ,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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