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자리
양수덕
쌀 나방들이 벽을 붙잡고서 땀을 흘린다
눈에 띄는 대로 압사시키려는 나와 도망 다니는 그들 사이는 허공도 벽이
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자리만 바꿔가면서 쌀 나방 못지않은 미물들이로군
허공도 벽인 관계들, 그래 참다못해 면상 없는 허공에 발길질하는군
그녀의 눈은 본래 은빛 빗방울이었다
빗방울이 바닥까지 하강하는데 평생이 걸렸고 내력은 만만치 않았다
세월의 지붕들을 타며 미끄러지며 이제 바닥에 누웠나
이 빗방울을 나뭇잎의자에 올려놓을 수 없다
투명한 힘살을 잡아당겨 볼 수도 없다
내가 그녀라고 말해도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태어나지만 돌이킬 수 없는
흐린 빗방울
세입자들의 봄날 같은 먼지구름
미래의 달뜬 구름을 만들기 위하여 지하상가는 공사 중이다
쿨룩거리는 기침구름을 헤집고 나는 새털구름 무늬로 잽싸게 빠져나간다
책 들고 이리저리 자리를 찾는다
불황을 모르는 야간 도서관에서는 한 몸 붙일 자리가 만만치 않다
호프집이라든가 영화관이나 쇼핑몰을 밤하늘삼아
야간에는 야간비행을 해야 하는 거라면,
프로방스를 부르며 도데의 별빛을 추적한다
가공식품 같은 내 상상 따라가다가 프로방스 풍 카페로 들어간다
커피 찻잔에 빠진 별 프랜차이즈 별
오늘의 쓴 물 안에서 푸른 몸 금 가고 깨질지라도 돌이켜라 별빛향수병
*『시에』2012-여름호 <젊은 시인>에서
* 양수덕/ 서울 출생, 2009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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