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파트의 글 237

세상이 단순해 보였던 때가 있었다(전문)/ 카를로 로벨리 作 : 김정훈 譯

세상이 단순해 보였던 때가 있었다     카를로 로벨리 作/ 김정훈 譯    단테가 『신곡La commedia di dante alighighieri』을 썼을 당시 유럽 사람들은 세상이 천상의 위계질서를 비추는 흐릿한 거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위대한 신과 천사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행성들을 이끌고 미천한 인간들의 삶과 사랑, 두려움에 관여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우주 한가운데에서 숭배와 반항, 회개 사이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우리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 후 몇 세기 동안 우리는 실재하는 세계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고, 그 속에 숨은 원리들을 발견하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략을 찾아냈습니다. 과학적 사고를 통해 복잡한 지식의 전당이 만들어집니다. 물리학은 앞장서서 지식들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

카를로 로벨리『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나가르주나」(부분, 여섯)/ 김정훈 옮김

나가르주나 (부분, 여섯)        카를로 로벨리지음/ 이중원 감수/ 김정훈 옮김    * 이것은 신기한 일이 아닙니다. 세계는 독립적인 실체들로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편의에 따라 여러 사물로 나누어놓았을 뿐이죠. 산맥은 개별 산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분이라 느끼는 대로 나눈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있기 때문에 어머니이고, 행성은 항성 주위를 돌기 때문에 행성이고, 포식자는 먹이가 있기 때문에 포식자이고, 위치는 다른 어떤 것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위치입니다. 시간조차도 관계에 의해 정의됩니다. (p. 173-174)   * 나가르주나는 2-3세기 사람입니다. 그의 저작에는 수많은 주석이 달려 있고 해석과 주해가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이러한 고대 문헌이 흥미로운 것은 바..

카를로 로벨리_『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부분들, 여덟)/ 김정훈 옮김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부분들, 여덟)         카를로 로벨리지음/ 이중원 감수/ 김정훈 옮김    * 1925년 여름, 스물세 살의 한 독일 청년이 바람이 많이 부는 북해의 외딴 섬, '성스러운 섬'이라는 뜻의 헬골란트(Helgoland) 섬에서 며칠 동안 불안한 고독의 나날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 섬에서 그는 모든 난해한 사실을 설명하고 양자역학의 수학적 구조인 '양자론'을 구축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 혁명이었을 겁니다. 청년의 이름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였죠. 이 책의 이야기는 그로부터 시작됩니다. (p. 프롤로그 中/ p. 9)   * 16년 후 유럽은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입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미 ..

이태준 문학의 산실, 성북동 수연산방/ 남명희(소설가)

이태준 문학의 산실, 성북동 수연산방      남명희/ 소설가    한양도성 북쪽 마을 성북구 성북동은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조선시대에는 시객詩客들이 와서 풍류를 즐겼고, 근대에는 많은 문인들이 모여 살며 창작활동을 펼친 곳이다. 심우장, 수연산방, 최순우옛집 등에는 아직 그들의 삶과 교류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33년 성북동에 집을 마련한 이태준은 당호를 '壽硯山房'이라 짓고 김기림 · 이효석 · 박태원 등과 를 결성하여 이곳에서 시와 문학을 논했다.  아름다운 문장의 대가이며 '조선의 모파상'이라 불렸던 이태준(1904~?)은 강원도 철원 태생으로 「달밤」, 「돌다리」, 「황진이」등 많은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겼으며, 수필집 『무서록』의 작가다. 1940년 간행한 『문장강화』는 지금도 글쓰기 실용서로..

유배지에서 추사를 지켜준 꽃/ 강은희(생태작가)

유배지에서 추사를 지켜준 꽃     - 제주수선화> 수선화과    강은희/ 생태작가      "수선화는 과연 천하의 큰 볼거리입니다. 강절江浙 이남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마을마다 한 치, 한 자쯤의 땅에도 없는 곳이 없는데 화품花品이 대단히 커서 한 송이가 많게는 십수화十數花, 팔구악八九萼, 오륙악五六萼에 이르되 모두 그렇게 핍니다. 꽃은 정월 그믐, 2월 초에 피기 시작해 3월이 되면 산과 들, 밭두둑 사이가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또는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합니다."  추사의 이 꽃편지가 아니었다면 수선화꽃으로 눈부신 제주 바닷가의 옛 풍광을 상상해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8년 3개월의 깊고 두려운 고독 속에 서 있던 그는 수선화꽃 더미로 들이치는 바람과 ..

치세의 중심에 시의 누각을 세우다_경회루/ 임연태

치세의 중심에 시의 누각을 세우다         경회루     임연태/ 시인    조선의 법궁 경복궁의 중심에 국보 경회루慶會樓가 있다. 조선 건국과 동시에 경복궁을 건립할 때부터 있었지만 태종 12년(1412)에 수리하면서 규모를 늘렸고 이때 '경회루'라는 이름도 지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고종 4년(1867) 경복궁과 함께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누대를 떠받친 돌기둥의 숫자와 모양에 음양의 이치와 오행의 도리가 담겨 있고, 마루판의 구조와 천정의 문양이 모두 정교한 솜씨로 사상적 근간을 담고 있다. 경회루는 외교의 공간으로 중요한 곳이었고 각종 연회와 강론과 시회詩會의 공간이었고 기우제를 지내거나 활쏘기와 군사훈련을 참관하는 곳으로도 쓰였다.   "백 자나 되는 높은 다락이 ..

시조와 성리학/ 원용우(시조시인)

시조와 성리학      원용우/ 시조시인 ·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시조 장르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은 시조가 언제 발생했느냐 하는 시기 문제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연원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 향가(신라, BC 57년~992년) 의 영향을 받아 고려(AD 918년~1392년) 중엽에 발생하여 고려 말 완성되었다고 하는 학설이 지배적이고, 우리의 국문학사나 학교의 교과서에 정설처럼 굳혀져 있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시조는 성리학에서 왔고 시조 형식은 3장 6구 12소절(음보)은 성리학 원리를 적용해서 만든 것이라 주장했다.   그렇다면 성리학이란 무엇인가? 성리학은 우주의 근본 원리와 자연의 순환 원리를 규명하는 학문이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전지인天地人 삼재설三才設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이 핵심이고 ..

문학의 힘을 믿다(전문)/ 김미옥

문학의 힘을 믿다(전문)      김미옥/ 문예비평가    『서동시집(West-ostlicher Divan』은 괴테의 유일한 단행본 시집이다. 괴테는 페르시아의 시인 하피즈의 『디반(Divan)』 시집을 읽고 영감을 받아 시를 썼다. 작품은 동방의 시인들과 노년의 괴테가 사랑했던 여인 마리안네에 대한 찬사와 사랑이 주축을 이루며 페르시아의 시 형식인 가젤의 운율을 독일어로 재현했다. 하이네의 표현을 빌리면 이 책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인사"다. (p. 201~ )   작품은 초판본에 12개의 시편만 수록되었다가 후에 「유고 중에서」가 추가되었다. 동방의 시인에 대한 찬사와 연인에게 바치는 연가는 생물학적인 나이를 초월하는 괴테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지인에게 말한 창작 의도다. "서양과 동양, ..

예술가의 서재_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이장욱(스페이스K 수석 큐레이터)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부분)        이장욱/스페이스K 수석 큐레이터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소설이지만 마음공부를 위한 실전 사례집 같은 책이다. 불교를 중심으로 동서양의 철학이 융합된 소설은 싯다르타(고타마 싯다르타와 다름)라는 한 인간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싯다르타는 고타마 싯다르타(석가모니)의 집안인 크샤트리아 계급보다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바라문의 아들이다. 부모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모든 이에게 기쁨을 주던 그는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나기로 한다. 그의 자애로운 아버지는 그토록 아끼던 아들이 자신을 떠난다는 슬픈 소식에 괴로웠지만 결국 하룻밤 만에 그의 결정을 허락한다. 아버지를 등지고 구도자의 길을 선택한 싯다르타는 그 이후..

간다라 불전 미술 속 여성들_싯다르타의 부인 야소다라/ 유근자

2. 싯다르타의 부인 야소다라      유근자/ 국립 순천대학교 연구교수    싯다르타의 부인이자 라훌라의 어머니 야소다라는 간다라 불전 미술에서 싯다르타와의 약혼, 결혼, 궁정 생할, 출가 전야, 애마 칸타카와 홀로 돌아온 마부 찬나를 만나는 장면에 등장한다. 석가족이 멸망 후 싯다르타의 이모 마하파자파티와 함께 석가모니를 찾아갔다고 하지만, 확실한 야소다라의 이미지는 앞에 언급한 장면에서 찾을 수없다.(p. 275)   1) 약혼 장면 속 야소다라  싯다르타는 야소다라와 혼인하기 앞서 약혼식을 거행했다. 야소다라의 아버지는 정반왕으로부터 싯다르타의 비로 딸을 달라는  청혼을 받고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정반왕은 태자를 위해 명문가의 여인을 채택하려 했지만 뜻에 맞는 이가 없었다. 선각왕의 딸 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