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위선환_Poem Essay『비늘들』/ 144 ⦁ 165

검지 정숙자 2022. 3. 25. 01:34

 

    비늘들 · 144

 

    위선환

 

 

  김제 가서, 겨울 하늘에 구름 덮인 것, 추운 하늘이 추운 그늘을 내려서 대지를 덮은 것 본다. 대지는 검고, 두둑과 고랑과 둔덕과 여러 군데에 희끗희끗 눈이 묻어 있다. 오래 기다려야 했으므로 추웠고, 떠는 이빨들은 이빨들끼리 부딪치며 떠는 소리를 냈고, 호남평야의 중심에 떨어진 별 한 조각이 아까부터 빛난다. 견디는 일이란 것이 기다리며 떠는 일이므로, 추운 겨울에 추운 들판에 놓인 볕 한 조각이 떠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므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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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늘들 · 165

 

 

  "기러기는 하늘을 날고 있는데, 기러기의 그림자는 강물을 건너가고 있으니···."

 

  내가 썼던 시 「불가사의다」 전문이다. 첫 시집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에 실릴 시로써 2001년 4월 23일에는 마지막 교정을 본 원고를 출판사에 우송하는 등 저자로서 할 일을 마쳤는데, 그로부터 3일째인 2001년 4월 26일 새벽에 두송백杜松栢이 쓴 글 「당송시唐宋詩에 나타난 선취」를 읽다가 아래와 같은 천의회의天衣懷義 선사의 화두가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기러기가 허공을 나니 그림자는 차가운 물에 떨어진다. 기러기는 발자국을 남기려는 마음이 없고 물은 그림자를 붇잡으려는 마음이 없다."

 

  놀란 나는 즉일에 출판사에 전화하여 사유를 말하면서 시를 교체해 달라고 요청하고, 교체할 시를 메일로 보냈으나, 이미 시집이 인쇄에 들어가 있어서 교체가 어렵다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시집을 낸 뒤에 표절하지 아니했음을 해명하는 방법은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아무래도 좋지가 않았다. 결국 출판사를 방문하여 인쇄비를 추가 지불하고 해당 지면을 교체하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만약에 야기될지도 모를 표절 시비를 막을 수 있었다. 내가 이 기록을 남기는 것은, 미루어 보건대 당송대 唐宋代에 쓰인 것이어서(천의회의 선사의 생몰년 등을 알아봤으나 확인 못 했다.) 시간적으로 아주 오래전에 쓰인 것이고, 공간적으로도 훨씬 떨어진 중국에서 쓰인 한 화두와, 그만큼 시공을 달리해서 쓴 나의 시가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게 같았다는 우연에 주의해서이며, 설령 우연이라 할지라도 표절은 전혀 용납되지 않는 금기임을 확인해서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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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em Essay 『비늘들』 2022. 3. 15. <상상인> 펴냄   

  * 위선환/ 전남 장흥 출생, 1960년 <용아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새 떼를 베끼다』『시작하는 빛』등, 합본시집『나무 뒤에 기대면 어두워진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