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석탄 유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향하여
정연수
우리나라의 일출 명소를 꼽자면 늘, 정동진이 으뜸이다. 정동진이 탄광촌이었다고 소개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도 있다. 강릉 시민조차 "처음 듣는 얘긴데 정말이에요?" 라며 반문할 정도이다. 정동진을 포함한 강동면에는 31개의 탄광과 광부 사택이 있었고, 저탄장의 검은 탄가루가 해풍을 타고 마을로 날아들었다. 1960~1980년대 정동탄광지구(정동진리, 상성우리, 심곡리) 주민 80%가 석탄산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전형적인 탄광촌이었다. 드라마 <모래시계> 이후 일출의 명소로 재장소화하더라도 탄광촌으로 기능한 기억은 기려야 할 소중한 역사이다.
석탄산업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는 운동을 삼척의 김태수 시인과 함께 시작했다. 삼척 · 태백 · 정선 · 영월 등 4개 시군의 탄광문화연구 단체와 강릉원주대학교 링크사업단이 등재추진위를 꾸린 것이 2020년 7월의 일이다. 정동진이야 탄광촌인 걸 모르고 넘겼더라도, 삼척과 태백 같은 대표적인 탄광 도시마저 그 흔적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막장에 들어간 가장家長 무사히 돌아오라고
남편의 신발 방 안쪽으로 돌려놓는
광부 아내의 손을
조상님이 잡는다
하느님이 잡는다
-전문. 맹문재, 「아름다운 미신」
출근할 때 남편의 안전을 기원하는 아내의 행위는 간절함과 애틋함으로 드러나는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다. "남편의 신발 방 안쪽으로 돌려놓는" 행위는 탄광촌에서 널리 행해지던 속신이다. 탄광의 사고가 잦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남편의 무사 귀가까지 가슴 졸이는 아내의 심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탄광이 문을 닫고, 사택 공동체가 와해하면서 탄광촌 고유의 풍속마저 사라지고 있다. 석탄산업 유물과 함께 다양한 문화도 사라져가는 것이다. 무형의 유산은 기록할 때 비로소 그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맹문재 시인의 「아름다운 미신」은 탄광 문화를 정립하는 소중한 기록인 셈이다.
하여, 올해에는 동해시립도서관의 지혜학교 독서프로그램에서도 이 시를 읽었고, K대학 로컬강좌의 기말고사에서도 이 시를 출제했다.
"광부 아내의 손을// 조상님이 잡는다// 하느님이 잡는다"라는 시구는 간결한 시적 미학의 절창이기도 하다. 어디 이 시뿐이랴.
이 시를 수록한 시집 『사북 골목에서』(푸른사상, 2020) 전편이 탄광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탄광촌 사람마저 탄광 문화를 잊고 지낼 때 충북 단양이 고향인 맹문재 시인이 광부와 그 가족, 광업소와 탄광촌 등의 이야기로 기록을 시작했다. 사북항쟁 40주년 기념 시집이란 타이틀에서도 확인하듯, 탄광촌에 대한 애정과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에서 기획한 시집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탄광 문화는 맹문재 시인과 시집 『사북 골목에서』에 큰 빚을 졌다. 현재 강원도에는 전국 4개 광업소 중에서 3개가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아직도 탄광촌 사택에서는 몸에 밴 금기와 속신을 지키며 살아간다. 머잖아 모두 폐광되고, 정동진처럼 전설로 사라질 것이다.
석탄산업의 유네스코 등재 추진은 우리의 문화를 지키는 일이며, 『사북 골목에서』 같은 탄광시집 발행은 탄광촌의 삶을 문화로 승화하는 소중한 작업이다. ▩ (p. 175-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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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소금』 2021-가을(39)호 <시와 함께하는 에세이> 에서
* 한영채/ 2012년『다층』으로 등단, 시집『여기가 막장이다』『한국탄광시전집』, 산문집『탄광촌 풍속 이야기』『노보리와 동발』『탄광촌의 삶』『탄광촌 도계의 산업문화사』, 현)탄전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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