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다산(茶山)의 매조도를 보면서/ 이응철(수필가)

검지 정숙자 2022. 3. 1. 22:41

 

    다산茶山의 매조도를 보면서

 

    이응철/ 수필가

 

 

  -묵은 가지 다 썩어서 그루터기 되려더니

  -푸른 가지 뻗더니만 꽃이 활짝 피었구나

  -어데선가 날아든 깃이 예쁜 작은 새

  -한 마리만 남아서 하늘가를 떠돌겠지

      -「梅鳥圖」, 茶山 정약용

 

  세계를 들먹이는 코로나 역병으로 집안에만 거하다 보니 연일 답답함이 영육을 우둔케 한다. 한 해의 끄트머리 동지섣달이라 아시타비我是打碑, 나는 옳고 남이 그르더란 문자가 속 빈 강정 같은 한 해를 반성케 한다. 몇 년 전 가족과 함께 다녀온 강진 다산 문학관을 돌아보며 유배 생활하던 다산의 생을 그려본다.

  귀양살이 18년, 박달나무처럼 속이 꽉 찬 선비, 대꼬챙이, 5백 권의 저서를 쓰느라 복숭아뼈가 세 번이나 닳도록 학문에 전념한 선비, 특히 지지난해 유배지에 시집올 때 입었던 낡은 비단 치마에 하피첩霞帔帖과 매조도梅鳥圖를 그려 아들, 딸에게 준 다산, 끝내 주지 못한 매화 끝가지에서 울고 있는 한 마리 새가 눈길을 끈다.

 

  다산은 남매를 두었다. 요즘처럼 역병이 돌아 6남 3녀 중 4남 2녀를 잃고 2남(학연, 학유)과 1년(홍연)를 두었다. 1801년 불혹에 강진 유배 중 당시 천연두(손님)가 만연해 잠시 주막집에 거하면서 일개 밥 파는 노파와의 대화에서 귀 기울여 쓴 『목민심서』는 후에 베트남을 통일한 호치민 주석의 머리맡 필독서가 아니었던가!

  천지간의 미묘한 이치도 깨닫고 그 노파 덕에 후학도 가르치면서 18명의 제자를 둔 이곳은 지금의 사의재이다. 늘 나는 외가 쪽을 닮았다는 해남 윤 씨도 이웃이다. 이곳에서 독서와 저술과 가르침으로 값지게 살아갔으며, 딸도 다산초당 제자에게 혼인한다.

  독신으로 살면서 늦둥이 딸(홍임)을 두게 된 사랑 이야기가 내겐 여유로운 관심이다. 강진 유배 생활 10년 만이었다. 독신으로 살며 오로지 학문에만 정신하다 보니 체력이 고갈되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자 다산초당을 제공한 윤규노 씨  . 그는 살림살이를 봐줄 여인을 적극 추천하여 보살핌을 받게 되었고, 그 소실에서 홍임이가 태어나면서 매조도 또한 잉태되었다. 첩에 대한 추측이다. 행여 객창 주막집 윗목에 거문고를 놓아둔 연두색 머리처네의 여인이 아닐까?

 

  손발에 풍기가 있고 말이 어눌한 자신을 묵은 가지로 비유하면서 다산초당에서 사랑을 받던 여인과 활짝 꽃이 피었다고 다산은 노래했다. 여기에 날아든 예쁜 작은 새는 1818년 9월에 다산이 귀환하면서 함께 동행한 엄마와 딸인 홍임(당시 9세)이었다.

  나귀를 타고 강진을 다녀간 큰아들께 문전박대를 지시한 본처 풍산 홍 씨, 정성껏 호박죽을 대령하여 건강을 되찾아 500권을 집필하게 한 박 여인은 끝내 발길을 돌려야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산 이별이 아닌가!

  그 먼 거리를 다시 돌아와 다산초당을 지키며 여인은 어떻게 생을 이어갔을까? 제자 윤종심에게 안부를 물으며 끝내 매조도를 건네지 못한 다산, 깃이 예쁜 작은 새 한 마리만 남아서 하늘가를 떠도는 시화 한 점은 다산문학관에서도 개인 소장이라고 쓴 명패를 달고 있다. 작은 새 두 마리를 그린 매조도는 딸 홍연이 시집갈 때 주고, 작은 새 한 마리를 그린 매조도는 어찌했을까? 부인 홍 씨가 시집올 때 6폭의 붉은 비단 치마는 두아들에게 교훈을 주는 글로 4폭을 만든 하피첩霞帔帖이요 2폭은 매조도 두 점을 그렸는데 선뜻 막내 홍임을 생각하며 그린 한 폭의 매조도를 끝내 건넬 수 없어 친구에게 주어 그 후손들이 소장했다가 세간에 알려진다.

  그 후 소식은 애틋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강진 18명 제자 중 윤종심에게 재물이란 허망한 것이란 편지를 보내면서 간간이 안부를 묻고 잘 돌봐주라고 켜켜이 당부하는 노스승의 붓끝이다. 절개 곧은 홍임 모친은 오로지 다산의 소실이란 자존감으로 생을 살았으나 역사는 여기서 마침표를 찍는다.

  그런 소이로 누군가가 노래한 남당사南唐詞 16수의 한시가 모녀의 삶을 미루어 짐작케 할 뿐이다. 이별의 정한과 원망  . 다산의 소실인 그녀가 행여 쓴 글은 아닐까?

 

 생은 기다림이다. 오죽하면 다산의 아호를 사암俟庵, 기다릴 사, 암자 암이라 지었던가! 역시 다산은 실학자 이전에 자상한 부친이었다. 남당사 두 편만 소개하면서 그리운 향을 전하는 여인은 누구일까?

 

  갈 생각만 하는 님 내 마음 슬퍼지니

  밤마다 한 심지 향 하늘에 닿았겠네

  어이 알리 온 집안이 환영하던 그 날이

  아가씨 집 운명 외려 기구하게 될 때임을

  어린 딸 총명함이 제 아비와 똑같아서

  아비 찾아 울면서 왜 안 오냐 묻는구나

  한나라는 소통국도 속량하여 왔다는데

  무슨 죄로 아이 지금 또 유배를 산단말가.

 

  경기도 두물머니 하류 쪽의 마재 소내, 여유당 뒷산에 합장해 강원수필회원들이 몇 년 전 돌아보고 예를 표한 것이 새롭다. 강진에서 해배령을 받아놓은 상태에 다산이 그린 매조 도를 혜초 밭에 씨 뿌리는 늙은이에게 주려 한다고 둘러댔다, 늙은이? 

   다시 매화도를 본다. 두 가지에 매화가 성글게 달려 향을 뿜고 있는 가지 아래 끝자락에 앉아있는 한 마리 외로운 새의 울음을 듣는다. (p.160-163.)

 

  * 하피첩- 그 후 이 보물은 7억 5천만 원에 국립민속박물관에 팔렸다.

  * 참고문헌-박석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정민의 다산 연구. 한승원 다산 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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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소금』 2021-여름(38)호 <시와 함께 하는 에세이> 에서  

  * 이응철/ 19997『수필과비평』으로 등단, 수필집『어머니의 빈손』『바다는 강을 거부하지  않는다』『달을 낚고 구름밭을 갈다』『감로개화송甘露開花頌』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