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지지대비각/ 김훈동

검지 정숙자 2022. 3. 10. 15:42

 

    지지대비각

 

    김훈동

 

 

  슬픔의 세월 삭이며

  홀로 선 느티나무처럼 지지대비

  외롭게 하늘 향해 발꿈치 치켜세웠네

  색바람에 애틋할 말마저 잊었나

  스물네 해 조선을 짊어진 정조

  어디쯤 수척한 용안 누이고 있을까

 

  사도세자 향한 가늠되지 않는 사랑

  느릿느릿 왕의 행차 환궁 길 먼데

  현릉원 돌아서지 못해 애통한 맘

  머무르고 싶은 아린 맘 맺힌

  적요한 지지대비각에

  소담스런 눈발만 흩날린다

    -전문-

 

  ◈ 죽은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애틋하고 그리운 마음이 맴도는 언덕에 지지대비각遲遲臺碑閣이 있다. 정조는 창덕궁을 떠나 수원 행차할 때마다 사도세자가 잠든 현륭원이 보이는 고개에서 "왜 행렬이 이리 더디냐"며 재촉했다. 참배하고 환궁할 때는 이 고개에서 현륭원顯隆園을 바라보며 '더디 가고 싶어 지체했다'는 곳이다. 순조 7년에 부왕인 정조의 애절한 마음을 담아 <지지대비각>을 세웠다. '더딜 지'를 붙여 지지대라 했다. 빨리 달려가 아버지를 만나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왜 이리 더디냐며 재촉했다. 한양으로 되돌아가는 행차마저 느릿느릿 더디게 가자며 한순간이라도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지지대비에 새겨져 있어 시인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신하들은 갈 길이 멀다고 환궁을 재촉하지만 정조는 더디기만 했을 것을 생각하니 가늠되지 않는 지극한 어버이 사랑이 아프게 다가왔다.

  11살에 아버지가 뒤주에서 죽는 장면을 목격한 정조다. 영문도 모르는 어린 세손이었던 정조는 그저 엎드려 떨면서 할아버지인 영조에게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지지대비각은 죽어가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린 아들 정조의 읍소가 들리는 듯하다. 이젠 슬픔의 세월을 삭이며 홀로 선 느티나무처럼 말이다.

  조선 22대 왕이 되어 지금의 청량리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의 명당자리로 옮겼다. 재위 24년 중에 13회나 수원에 행차했다. 사도세자가 살아 있을 동안 못했던 효도를 임금이 돼서야 마음껏 했다. 반대파들은 정조의 목숨을 노려 늘 불안한 감정에 휩싸이게 했다. 어디쯤 수척한 용안을 편안히 누이고 있을까. 지금은 찾는 사람들이 드문 쓸쓸하고 고요한 지지대비각에 225년 전에 정조가 흘렸을 눈물이 눈발처럼 흩날리는 듯 마음에 다가왔다. 2년여 이어오는 코로나 팬데믹에 세계문화유산 화성華城을 수십 차례 순례했다. 전조가 세운 화성 5.7㎞에 들어선 건축물 58동을 어반 스케치와 당시 정조의 마음으로 『수원화성의 숨결, 시와 그림으로 빚다』라는 시화집을 상재했다. 「지지대비각」은 그중 한 작품이다.▩ (p. 6)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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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집 · 서울』 2022-3월(245)호/ <친필로 다가오는 詩 60>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