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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네,
슬프네 하면서······
최문자
꽃 꿈이었다. 수선화 한 송이가 거실로 들어왔다. 슬프네, 슬프네 하면서 나를 따라다녔다. 슬프다고 나에게 도착하는 것과 슬프다고 나를 버리는 것 사이에 나는 서 있었다. 아침, 꽃들에게 물을 주면서 트로트 가수처럼 흰 꽃에게 물었다. '새삼스럽게 네가 왜 내 꿈에서 나와?'
꽃 꿈을 꾸는 동안 한 청년이 코로나 확진 후 다섯 시간 만에 죽었다는 뉴스가 시청 앞을 통과하고, 반포대교를 건너 남해 저구항에서 첫 배를 타고 소매물도까지 건너가는 동안 이윤설, 김희준 시인이 죽고, 최정례 시인까지 죽음을 포개는 동안 나는 우두커니 서 있는데 베란다에서 수선화 한 송이가 신나게 피고 있었다. 죽음은 꽃과 별과 죽은 자들이 변방에서 얼어붙은 채 감쪽같이 살아 있었던 거다. 한 번도 붉어보지 못한 이 흰 꽃이라도 사랑해야지, 사랑해야지 하면서 나처럼 물을 준 뒤 죽은 자들 모두는 흡흡거리며 각자 죽음의 언덕을 다시 기어오르고 있었던 거다. 공터에서 한 사람의 마음 이쪽과 저쪽을 돌아다니다가, 죽음은 익명으로 숨죽이고 있는 나를 찾아내고 있었다. 등짝에 툭툭 별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꽃 꿈은 설레는 것이 아니라 공포였다.
코로나 위기를 겪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좋은 시를 쓰는 젊은 두 시인을 잃었다. 김희준 시인(1994-2020, 26세)과 이윤설 시인(1969-2020, 51세)이다. 이윤설 시인은 2006년 신춘문예 3관왕(조선일보, 세계일보, 동아일보)으로 등단하여 시뿐 아니라 희곡, 영화, 드라마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좋은 작품을 여럿 남겼다. 드라마도 방송사와 계약한 상태에서 암이 온몸에 전이되어 짧은 생을 마쳤다. 임종 전까지 극심한 통증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고 열정적으로 쓰고 있어서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고 한다.
2017년 『시인동네』로 등단한 김희준 시인은 경상대학교 대학원 재학중에 교통사고로 숨졌다. 김희준 시인은 비록 활동 기간이 짧았지만 시적 재능과 언어 감각이 빛나는 시인이었다. 통영여고 재학 중 총 64회(대상, 장원)나 공식 수상 기록을 남겼고, 등단 후에도 좋은 작품을 수없이 발표하여 독자들을 매혹시켰다. 시인이 젊어서 죽으면 젊음이나 순결함을 그대로 동결한 것 같은 맑음이 언제나 수선화 같은 향을 풍겨 그들이 쓴 작품들은 후세의 독자까지도 매혹시킨다고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가 말했다.
윤동주의 시비를 보기 위해 나는 우지를 여행한 적이 있다. 우지는 교토에서 가까운 거리인데 늘어선 산자락에 우지강이 길게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 긴 강의 몇 개 다리 중 하나인 아마가세 구름다리에 서서 윤동주 시인을 생각했다. 서울에서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 시인은 1942년 3월, 도쿄의 릿교立敎대 문학부에 들어가 다섯 달을 다닌 후 같은 해 가을,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으로 편입을 한다. 재학 시절 교우들과 우지로 소풍을 갔고, 우지강의 이 아마가세 다리에서 마지막 사진을 남겼다.
천재성이 있다는 시인들은 왜 일찍 생을 마감할까? 문학판에서 시인들의 요절은 종종 신화적인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요절한 시인이 면모가 부각된 글이나 책은 시인들의 천재성을 더 절실하게 드러낸다. 아까운 시인들이 젊은 나이에 죽음으로 사라진 일은 한국 문단에서 그 수가 적지 않다. 김소월, 이상, 윤동주, 박용철, 이장희, 임홍재, 박인환, 신동엽, 김수영, 고정희, 박정만, 기형도, 이연주, 진이정, 허수경, 금은돌······ 그리고 이윤설, 김희준 시인, 이 밖에도 찾으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이 시인들에게 일찍 찾아온 죽음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작품이 사후에 더 많이 읽힌다는 것이다. 죽기 전에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문학에 다 쏟아부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이들이 죽기 바로 직전 시를 봇물처럼 토해냈다는 사실이다. 이외에도 이들 시인의 죽음 직전의 여러 이야기가 남아 전해지고있다. ▩ (p. 6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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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문자 첫 산문집 『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에서/ 2022. 3. 14. <난다> 펴냄
* 최문자/ 1943년 서울 출생,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귀 안에 슬픈 말 있네』『나는 시선 밖의 일부이다』『나무고아원』『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등, 시선집『닿고 싶은 곳』,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및 동 대학 총장 & 배재대 석좌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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