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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불안의 서』/ 428 무관심의 미학 : 배수아 옮김

검지 정숙자 2022. 3. 13. 23:35

 

            428

      무관심의 미학

 

     페르난두 페소아/ 배수아 옮김

 

 

  몽상가는 개개의 사물을 대할 때, 그 사물의 특징이 그에게 분명한 무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각각의 사물 또는 사건에서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꿈에서 얘기될 만한 것을 추출해내면, 사물의 실제성은 모두 죽은 질료가 되어 외부세계에 남겨진다. 현명한 자라면 이런 능력을 연마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감정에 충실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포부나 동경 그리고 욕망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방식으로 창백한 승리를 체험한다. 기쁨과 불안조차 마치 아무 의미 없는 것인 양 그렇게 통과해간다.

  자기절제가 최고 수준에 이르면 스스로에게 무관심해진다. 이때 몸과 영혼을 집이나 땅 정도로 여기게 된다. 운명에 의해서 부여받은 삶의 터전과 다를 바 없이 말이다. 우리의 꿈과 비밀스러운 욕망과 오만한 자세로 조우한다. 높은 신분의 귀인이 되어 그들을 예의 바르고 세련되게 무시해버린다. 우리 자신이 동석하는 그런 자리에서 결코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순간도 혼자일 수 없으며 늘 우리 자신이라는 목격자에게 주시당하므로, 우리 자신에게조차 낯선 타인에게 하듯이 굴어야 한다. 능숙하고 그늘 없는 거동을 유지한다. 고상하기에 거리감이 있고, 거리감이 있기에 냉담한 그런 태도.

  우리가 스스로에게 신용을 잃지 않으려면 포부와 열정, 욕망과 희망, 강박과 내적인 불안과 작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 자신이 항상 우리와 동석하고있으므로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며 혼자 남겨질 일도 없다고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마음 자세라면 우리는 열정이나 포부를 막아낼 수가 있다. 열정이나 포부는 우리를 취약하게 만들 뿐이다. 또한 우리는 욕망이나 희망을 품지 않을 것이다. 욕망이나 희망은 원래 저열하고 투박한 것이니까. 마찬가지로 강박이나 내적 불안에도 굽히지 않을 것이다. 강박적인 움직임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서툰 행동일 뿐이고 초조함이 드러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조악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귀족이란 자신이 결코 혼자가 아님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이다. 품위와 예의범절은 상류층의 핏속을 흐르는 요소다. 그런 귀족을 내면화한다. 귀족을 살롱과 정원에서 데리고 나와 우리의 영혼 속, 우리 존재의 의식 속으로 옮겨놓는다. 그리고 항상 우리 자신에게 신경을 쓴다. 늘 외양과 태도를 가다듬어서 품위와 예의범절을 지킨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각자가 하나의 동네, 신비의 도시를 이룬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역의 삶을 섬세하고 고상하게 가꾸어서, 최소한 우리 감각의 향연만은 힘껏 위엄 있게 만들고, 우리들 사상의 만찬에서 우아하고도 꾸밈이 지나치지 않은 예의범절을 유지해야 한다. 다른 영혼들이 우리 주변에 지저분하고 가난한 거주지를 형성해버리지 못하도록 우리 구영의 경계를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 우리의 김정이 담긴 파사드*부터  우리 수줍음이 머무는 구석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고결하고 청명해야 한다. 차분하면서도 허세와는 거리가 먼 소박함을 바탕으로 조각되어야 한다.

  모든 감각을 명료하게 구현하는 방식과 유형을 알아내야 한다. 사랑을 사랑의 꿈이 드리우는 그늘이 될 때까지 옅게 환원시키고,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물결의 주름과 주름이 창백하게 떨리며 진동하는 순간 자체로까지 축소시킨다. 욕망을 무용하고 무례한 것으로 바꾸어서, 우리 영혼이 혼자 지어 보이는 부드러운 미소와도 같은 무엇이 되게 한다. 자신을 구현하거나 심지어 표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무언가를 만들어본다. 증오를 잘 달래서 사로잡은 뱀처럼 잠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공포에게는, 모든 표현 중에서 눈동장 담긴 번민의 눈빛만을 허용한다. 우리 영혼의 눈에는 이러한 대도만이 미학적이기 때문이다. (p. 707-709)

 

  * 파사드(프랑스어, Facade): 건물의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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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르난두 페소아 | 배수아 옮김 『불안의 서에서/ 초판 2014. 3. 27. 초판 10쇄 발행 2018. 5. 10. <봄날의 책> 펴냄.

 *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 47세)/ 1888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나 양아버지가 영사로 근무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일곱 살 때 리스본으로 돌아와, 1935년 그곳에서 일생을 마칠 때까지 무역통신문 번역가로 일하며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생전에 그는 몇 권의 시를 발표했을 뿐, 작가로서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의 사후 발견된 유고는 시와 드라마 초고, 정치적 에세이 등 모두 27,543매나 되었다. 그중 1982년 출간된 유작 산문집은 문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오늘날 그는 포르투갈 현대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손꼽힌다.

  * 옮긴이 배수아/ 소설가이자 번역가, 지은 책으로『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바람인형』『뱀과 물』(소설집), 『철수』(중편소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에세이스트의 책상』『올뺴미의 없음』『독학자』『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장편소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불안의 꽃』『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인간과 말』『눈먼 부엉이』『꿈』『현기증, 감정들』『대심문관의 비망록』『자연을 따라, 기초시』『산책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