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불의로 살기보다
의로써 죽겠다
강준희/ 소설가
충忠이 의로운 일을 위해 쓰이면 절節이 되고, 부모를 위해 쓰이면 효孝가 되며, 세상과 사람을 위해 쓰이면 인仁이 된다. 그리고 도의나 도덕을 위해 쓰이면 예禮가 된다.
많은 무고한 선비들이 무참히 죽은 갑자사화甲子士禍, 조선 연산군 10년(1504년)에 폐비 윤 씨와 관련, 많은 선비들이 죽임을 당한 사건 갑자사화, 연산군의 생모 윤 씨가 폐위돼 사약을 받고 죽은 일에 관계된 신하들과 윤 씨의 복위를 반대한 신하들이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 화를 당한 사건 갑자사화.
이 갑자사화 때 홍문관의 으뜸 벼슬 대제학大提學 홍언충洪彦忠은 참혹한 고문을 받고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채 옥문 밖에 버려져 기지사경을 헤맸다. 이때 권신權臣이자 간신인 김안로金安老가 마침 옥문 앞을 지나다 처참한 홍언충의 몰골을 보고 발길을 멈췄다. 김안로는 홍언충과 홍문관에서 함께 공부하던 동접배였으므로 두 사람은 누구보다 친했다. 김안로는 목불인견의 참혹한 홍언충을 보자,
"이보시오 우암(寓庵; 홍언충의 호) 이게 대체 무슨 꼴이요 그래. 왜 이 지경이 되셨소 우암?"
김안로는 피범벅이 된 채 쓰러져 있는 홍언충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김안로는 홍언충과 홍문관에서 동문수학을 해 친했지만 나이가 여덟 살이나 많아 '하게'를 하지 않고 '하오'를 했다.
"왜 이 지경이 됐냐고? 그것을 몰라 묻는 겐가? 홍문관의 물이 묻어서 그렇다. 홍문관의 물?"
홍언충이 김안로를 똑바로 쳐다보며 꾸짖듯 말했다. 그런 홍언충의 눈길이 어찌나 매서운지 김안로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홍문관의 물?"
김안로가 시르죽은 소리로 물었다.
"그렇다. 홍문관의 물? 아직도 그대는 홍문관의 물을 모르는가?"
홍언충이 코웃음을 치며 계속 김안로를 노려봤다. 그런 홍언충의 양 뺨으로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내렸다. 아마 모진 고문으로 몸을 크게 다친 모양이었다. 홍언충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선혈을 손으로 한 번 쓰윽 닦아 김안로의 눈앞에 들이대며,
희락당(喜樂堂; 김안로의 호), 아니 안로야? 잘 봐라. 이게 바로 홍문관의 물이다. 이제 알겠느냐?"
홍언충은 피로 범벅이 된 몸을 하고서도 의연하고 당당했다. 어디서 그런 기개와 기백이 생기는지 몰랐다. 홍언충이 말한 홍문관의 물은 홍문관에서 배운 학문과 의리를 홍문관의 물에 비겨 김안로를 호통쳤던 것이다. 그러니까 홍문관에서 배우고 익힌 선비정신 대로 하다 보니 이리 됐다는 뜻이었다. 홍언충의 이 같은 언동에 김안로가 교언영색으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우암! 그깟 학문과 의리가 다 무엇이오. 그리고 선비정신은 또 다 무엇이오. 아무리 학문과 의리가 중하고 선비정신이 소중한들 목숨만이야 하겠소. 왜 그리 고집을 부려 이런 참혹한 변을 자초하시오. 연산군이 비록 황음荒淫 횡포로 폭정을 한다 하더라도 항거 역린逆鱗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으면 화를 당하지 않을 게 아니오. 그런데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참화를 자초하시오. 우암!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 편하게 사시오. 강하면 부러지는 법이오!"
김안로는 어떻게 해서라도 홍언충의 마음을 돌려 연산군에 충성할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홍언충은 김안로의 이 같은 말에 격노했다. 홍언충이 훼절해 연산군에 충성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라는 소리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홍언충은 분기탱천 소리쳤다.
"무엇이라? 그깟 학문과 의리가 다 무엇이고, 선비정신은 또 무엇이냐고? 왜 고집을 부려 참혹한 변을 자초하느냐고? 항거 역린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화는 당하지 않는데 왜 긁어 부스럼 만들어 화를 자초하느냐고? 그러니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 편하게 살라고? 네 이노옴! 이 우수마발牛溲馬勃만도 못한 놈! 그렇다면 네 놈이나 연산에 붙어 충견 노릇하며 부귀영화를 누려라. 나는, 이 홍언충은 홍문관에서 배운 대로 불의로 살기보다 의로써 죽겠다!"
홍언충이 벼락 치듯 호통치며 김안로를 꾸짖었다.
"이놈 안로야! 네놈은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내놓으라고 배운 사견위치명士見危致命을 잊었느냐? 그리고 또 선비가 편안히 살기만을 바란다면 선비라 할 가치가 없다는 사이회거士而懷居 부족이위사의 不足以爲士矣도 잊었느냐? 이놈 안로야! 선비가 무엇이냐? 글 많이 읽어 학문이 높다고 선비냐? 높은 벼슬 높은 지체로 높은 환로宦路에 있다고 사대부 선비냐? 선비는 조대措大, 개결, 청빈, 지조, 경개耿介가 중요하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서릿발 같은 기개와 주리면서도 의연하고 굶으면서도 당당한 자세가 선비 아니더냐. 죽음을 앞에 두고도 추상같은 기개와 송죽 같은 지조로 훼절하지 않아야 참선비가 아니더냐. 권력에 초연하고 명리名利에 초연하고 벼슬 따위에 초연해야 참선비가 아니더냐. 이것이,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선비의 길이 아니더냐!"
홍언충은 피가 줄줄 흘러 눈으로 들어가도 그 피를 손으로 훔쳐 땅에 뿌리며 대갈했다.
이리하여 홍언충은 결국 진안 땅으로 귀양을 가게 됐고 김안로는 이런 홍언충으로 화를 입을까 두려워 끝내 외면했다. 홍언충이 김안로의 말대로 연산에 거역하거나 역린하지 않고 이래도 예, 저래도 예 하는 목랑청이가 되거나 옳사옵니다, 그렇사옵니다하는 팡타난타로 살았다면 벼슬 승차는 말할 것도 없고 부귀영화까지도 따 놓은 당상이었다. 한데도 홍언충은 높은 벼슬과 부귀영화를 초개같이 버리고 갖은 박해와 온갖 고통과 모진 고문을 당하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귀양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약이 도착하기만을 구메구메 기다렸다. 연산은 고약한 버릇이 있어 귀양가는 사람한테 도중에 사약을 내려 죽이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을 홍언충은 알고 있었다.
홍언충은 금부도사가 사약을 가지고 이제나 오나 저제나 오나 하면서 귀양길을 재촉했다. 그런 홍언충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써놓고 있었다.
"한평생에 우활迂闊하고 옹졸함은 학문의 공이라, 서른두 살에 세상을 마치니 명은 어찌 그다지 짧으며 뜻은 어찌 그다지 긴고, 옛 고을 무림 땅에 무덤을 정하니 푸른 산은 위에 있고 물굽이는 아래에 흐르도다. 천추만세 뒤에 누가 이 들판을 지날는지 반드시 이곳을 가리키고 배회하며 슬퍼할 사람이 있을지어다."
이 같은 묘비명을 초잡아 놓고 문경새재를 넘어 대탄원大灘院에서 쉬고 있는데 기다리던 사신 행렬이 말을 타고 급히 달려왔다. 홍언충은 사신 행렬을 사사약賜死藥을 가지고 달려온 금부도사로 알고 올 것이 왔구나 했다. 그런데 이 무슨 뜻밖의 소식인가. 사신 행렬은 사약을 가지고 온 금부도사가 아니라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중中宗이 반정反正했으니 급히 입궐하라는 어명이었다. 참으로 기쁘고 벅찬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한데도 홍언충은 이 기쁜 소식을 듣고도 목놓아 울었다. 새 임금 중종을 맞아 기뻐서 우는 울음이 아니라 옛 임금 연산을 잃은 슬픔의 울음이었다.
"오, 내 주인이 바뀌어 다른 주인이 들어섰구나!"
보통사람이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련만 홍언충은 그 반대였다. 홍언충은 대궐이 있는 서울을 향해 사은숙배한 다음 영화의 길을 버리고 형극의 귀양길을 택했다. 선비로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는 불사이군不事二君 정신 때문이었다. 아무리 포악한 정치로 무고하게 고문하고 귀양까지 보낸 연산이지만 홍언충은 연산의 신하이자 중종의 신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홍언충은 유배지 적소에서 연산이 유배되어 있는 강화도를 향해 요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뿐만이 아니었다. 홍언충은 거듭되는 조정의 입사入仕 요구에 끝내 거절,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채 자신을 죽이려던 폭군 연산을 위해 절개를 지키다 죽었다. 그의 나이 한창인 서른다섯 살 때였다. 참으로 대단한 충절이요 대단한 지절이었다.
이 같은 충절과 지절은 그의 아버지 홍귀달洪貴達도 마찬가지였다. 홍귀달은 성격이 강직해 불의에 항거한 곧은 선비로 유명했다. 홍귀달이 경기도 관찰사로 있을 때 연산군이 그의 손녀를 궁중에 들이라는 어명을 내렸을 때 이 어명이 부당하다 하여 단호히 거절한 사실 하나만 봐도 그의 성격과 기개와 의기를 알 수 가 있다. 이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감히 생의도 못 낼 일이었다. 더욱이 연산은 걸주桀紂와 비길 공전 空前의 폭군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폭군 연산의 어명이 부당하다 하여 거절했으니 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연산은 홍귀달이 지엄한 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했다 하여 장형 백 대를 쳐 경원 땅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러다 유배 도중 뒤따라 온 승명관承命官에 의해 교살되고 말았다. 연산은 자신의 폭정을 바른말 곧은 소리로 직언 직간하는 홍귀달이 눈엣가시 같아 귀양을 보내고 바로 승명관을 뒤따라 보내 제거시켰던 것이다.
홍귀달이 살았을 때 연산의 폭정에 대한 항거는 참으로 대단했다. 그 항거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허백당 (虛白堂; 홍귀달의 아호)의 직언과 기개에 폭군 연산도 손들었다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과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요 그 아들에 그 아버지였다. ▩ (p. 12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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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2-4월(638)호 <소설>에서
* 강준희/ 1935년 충북 단양 출생, 1974년『현대문학』추천(소설 '하느님 전상서')으로 등단, 하버드대학 도서관 소장[강준희 문학전집](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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