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탄생-도깨비 1
황봉구
아가야
사랑과 바램으로 어둠에서 태어났구나
애기 도깨비들도 못내 그리움으로
어둠에서 흔들리는 불빛으로 태어났지
꿈이 잉태되어 한 줄기 빛으로
어둠을 헤쳐 나가는 아가야
새끼 도깨비들도 너처럼
바람을 타고 어둠을 물리치며
밝은 꿈으로 수를 놓는구나
아가야 들리느냐
갓난 도깨비들이 검은 숲속에서
어른들이 듣지 못하는 낮은 목소리로
팔랑거리는 나뭇잎들과 속삭이는 모습을
아가야
말을 모르는 너만이
도깨비들의 맑은 노랫소리를
볼 수 있는 것을
아가야
나에게도 전해다오
네 초롱한 눈에 맺힌 도깨비의
그림자라도 비쳐다오
- 시집 『생선가게를 주제로 한 두 개의 변주』
▶도깨비(발췌)/ 도깨비가 사라졌다. 도깨비가 도깨비답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도깨비는 본디 잘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요즘에는 꿈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맨 눈에 안 보여도 꿈속에서 장난치는 도깨비, 방망이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녀석들, 머리에 뿔 하나 달린 도깨비가 예전에는 원하든 안 하든 잠 잘 때마다 곧잘 꿈을 헤저으며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금 녀석들은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도깨비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고, 도깨비를 소재로 하는 동화책도 거의 없다. 어린 아이들도 도깨비를 잘 모른다. 화롯불 주위에 둘러 앉아 할머니한테 도깨비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은 이제 전설처럼 꿈 같은 일이 되었다. 어른과 달리 꿈이 많고 순수해서 도깨비를 맨눈으로도 볼 수 있는 아이들에게 도깨비는 사전 속의 단어가 되었다. 아이들은 오로지 엄지손가락으로 스마트 폰을 빠르게 눌러대는 데 익숙하다.
참으로 안타깝다. 도깨비들은 정말 모두 사라졌을까. 죽임을 당했을까. 아무도 보아주지 않고 관심을 보이지 않아 배고파 굶어 죽었을까. 절멸당한 상태라 더 이상 세상에 나올 수 없는 것일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마도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급속도로 진화를 했는지도 모른다. 옛날 도깨비는 온 데 간 데 없고 엉뚱하게 컴퓨터, IT와 AI의 기기들이 날뛰고 있다. 이들이 새로운 도깨비임에 틀림없다. 시대가 뒤바뀌었다. 전자화된 기계들에서 예전의 도깨비 모습은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다. 새롭게 탄생해서 흉측한 모습을 갖는 도깨비가 여기저기 날뛰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도깨비에 적응을 하며 지낸다. 21세기의 사람들을 수백 년 전 사람들이 본다면 도깨비로 보일 것이다. 사람이 도깨비다. (p. 시 253-254/ 론 25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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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봉구 에세이 『천천히 그리고 오래』에서/ 2022. 2. 21. <동학사> 펴냄
* 황봉구/ 1948년 경기 장단 출생, 음악 에세이『태초에 음악이 있었다』『소리의 늪』『소리가 노래로 춤을 추다』, 미술 에세이『그림의 숲』, 예술철학담론『생명의 정신과 예술』(1.2.3권) 『사람은 모두 예술가다』, 여행기『아름다운 중국을 찾아서』『명나라 뒷골목 60일간 헤매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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