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가
윤선도(1587-1671, 84세)
내 벗이 몇인가 물, 돌과 소나무, 대나무로다
동산에 달 오르니 그것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이면 그만이지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 빛이 좋다 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때가 많도다
깨끗하고도 그칠 때가 없는 것은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른 듯 누래지니
아마도 변치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 모르는가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 그로하여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한밤중에 밝은 것이 너만 한 이 또 있으랴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전문-
▶내려놓기(발췌)/ 그가 말하는 다섯의 벗은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그리고 달이다. 이들은 비어있고, 곧으며, 변함이나 흔들림이 없고, 꾸준하며 말이 없다. 그는 보길도라는 외지고 한적한 곳에서 마음을 달래며 지금으로 말하면 전원생활을 즐겼음이다. 그는 정말 작품에 나오는 어부만큼이나 모든 것을 잊고 떠나서 삶을 즐겼을까. 동아시아에서 나무꾼이나 어부는 일상의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비운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윤선도의 작품들은 바로 앞에서 말한 선인의 경지에 이른 듯 보인다. 그러나 실제는 전혀 상반된다. 그는 사대부에 속한 사람이다. 양반계급으로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엄청난 재산을 지닌 지방의 호족이다. 더구나 중앙에도 진출하여 권력을 다투던 인물이다. 그는 남인의 거두로서 서인 송시열에 맞서 정권 투쟁을 벌이다가 겨우 목숨을 건지기도 했고, 여러 차례 귀양살이도 했다. 그의 일생은 중앙에서의 벼슬과 당쟁, 그리고 귀양과 낙향으로 점철된다. 틈틈이 보길도 생활을 했고 장수한 덕으로 말년을 보길도에서 보낼 수 있었다. 보길도의 삶도 유유자적이었지만 호화로운 지배계급의 여유였다. 그는 정철과 유사한 점이 많다. 정철의 문학작품은 뛰어나지만 그의 실생활은 달리 보인다. 그 역시 정권다툼의 선봉에 선 인물이다. 윤선도나 정철이나 모두 그들이 노래한 작품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원의 삶을 즐겼을까.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이를 보여준다. 이들은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세속의 욕망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다. 심하게 말하면 이들은 젊어 한학을 공부하며 익힌 도연명의 삶과 시를 상상하거나 흉내만 냈을지도 모른다. 양반들의 삶이 대체로 그러했을 것이다. (p. 시 149-150/ 론 15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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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봉구 에세이 『천천히 그리고 오래』에서/ 2022. 2. 21. <동학사> 펴냄
* 황봉구/ 1948년 경기 장단 출생, 음악 에세이『태초에 음악이 있었다』『소리의 늪』『소리가 노래로 춤을 추다』, 미술 에세이『그림의 숲』, 예술철학담론『생명의 정신과 예술』(1.2.3권) 『사람은 모두 예술가다』, 여행기『아름다운 중국을 찾아서』『명나라 뒷골목 60일간 헤매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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