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2월을 가장 사랑한 작가/ 임헌영

검지 정숙자 2022. 2. 21. 17:35

 

    2월을 가장 사랑한 작가

 

    임헌영

 

 

  2월, "오는 봄의 먼 치맛자락 끄는 소리는/ 가려는 '찬 손님'의 무거운 신발 끄는 소리인가"(변영로「2월 햇발」)라는 달이자, "봄보다 한 걸음 앞서 우리들 마음속에 봄이 오는 달"(박목월 「춘신春信」)이다.

  이 달을 가장 사랑한 작가는 단연 빅토르 위고였다. 그는 생일이 2월 26일에다 출세작인 사형수 폐지 운동의 선구적인 소설 『사형수의 마지막 날』을 출간한 달(1829년 2월)이었고,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문예사조를 바꾼 운문비극 『에르나니』를 코메디 프랑세즈 극장에서 첫 공연한 날(1830년 2월 25일)이었다. 도냐 솔이란 처녀를 두고 고메즈 공작과 돈 카를로스 왕, 왕에 적대하다가 피신 중 산적이 된 에르나니가 삼각 대결을 벌였으나 여인의 사랑을 차지한 것은 산적이라는 줄거리는 절대왕권을 존중하는 고전주의자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발칙한 짓거리였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온 문단이 발칵 뒤집어져 물의를 일으키다가 초연 날 고전주의 지지자들이 극장의 1층을, 낭만파들이 2층을 차지하고는 서로 야유와 박수와 환호성을 지르는 등 온통 들떴다. 낭만파 응원단장을 맡은 테오필 고티에가 붉은 코트에 장발 차림의 투지로 낭만주의자들의 완승을 이끌어냈다. 하룻밤 사이에 파리의 문단은 '고전주의의 시대는 거하고 낭만주의의 시대가 내하도다'였다.

  위고는 유치환처럼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아델 푸셰와의 사랑을 굳혔으나 극력 반대하던 어머니가 죽은 뒤에야 바로 결혼하여 4남매를 기르며 화목한 가정을 이뤘다. 그러나 믿고 믿었던 아내가 당대 최고의 평론가 생트뵈브와 눈이 맞아버려 그 뒤부터 바람둥이가 되었다는 설이 설득력을 갖는다. 원인이야 뭐든 그의 외도는 너무나 유명하여 세계문학사에서 바이런과 금메달을 다툴 지경이었고, 은메달은 톨스토이, 동메달은 소문으로는 가잘 떠들썩한 괴테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이 서른 살의 오입쟁이가, 절세의 미녀로 용모 값을 톡톡히 하는 바람둥이 여배우로서 신고전주의의 조각가인 프라디에와의 사이에 딸 하나를 가진 26세의 쥘리에트 드루에를 만난 것은 1832년이었다. 이들의 사랑은 너무나 깊고 공개적이어서 위고는 모든 공식행사와 생활은 아예 쥘리에트와 함께여서 아내는 그야말로 내자內子로서 집에 둔 채 외자外子는 그녀로 대체했다. 그녀는 위고를 사랑하면서 정숙해져 평생 동안 2만5천 통의 편지를 썼으며 온 방안의 벽을 위고의 영상으로 채웠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의 사랑이 2월과는 무슨 관계일까.

  위고가 그녀와 첫 깊은 관계를 맺은 날이 1833년 2월 16일이었는데, 이 대문호가 이 날을 얼마나 중시했던지 『레미제라블』에서 마리우스가 코제트와 결혼한 날로 잡았을 지경이었다. 어떤 전기에는 그들의 첫 관계가 19일이라고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어느 날이든 두 사건은 같은 날이었으리라.

  소설에서는 1833년 2월 16일을 "축복받은 밤"이라며 "참회의 화요일! 참 잘 됐다." "참회의 화요일 결혼에 배은망덕의 자식은 없다"(정기수 옮김, 민음사, 제5권 321~323쪽)는 속담까지 동원한다.

  첫 사랑의 관계를 중시하는 위고의 이런 자세는 훗날 제임스 조이스에게도 나타난다. 방황 중이던 그가 이미 사랑하던 두 남자를 잃은 과거를 가진 호텔 종업원 노라 바너클을 처음 만난(1904년 6월 10일) 일주일 뒤 첫 관계를 가졌는데, 바로 그날이 1904년 6월 16일이었고, 이 날은 소설 『율리시즈Ulysses』의 시간적인 배경(8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이 되었다. ▩ (p. 03)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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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집 · 서울』 2022-2월(244)호/ <문학의 향기>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