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소나무 이야기
임정현
이 땅의 나무는 대강 1천여 종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선호하는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이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나무보다 그 숫자가 10배나 더 많으며 십여 년 전의 조사 결과도 같았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왜 소나무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소나무는 100여 종이 넘으나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잎 2개가 한 짝을 이루고 줄기는 붉고 구불구불한 토종 소나무와 잎 2개가 짝을 이루고 줄기에 싹이 나며 곧게 자라는 미국산 '리기다소나무(Pinus Rigida)'이다. 우리 소나무가 한반도에서 자라기 시작한 것은 6천여 년 전이며 1천 400여 년 전부터 그 세력이 왕성해졌다고 한다.
소나무의 학명은 '파이너스 덴시플로라(Pinus Densiflora)'인데 '파이너스'는 산에서 나는 나무라는 뜻의 켈트어 'Pin'에서 유래되었다. 우리 소나무를 영어로 '재패니스 레드 파인(Japanese Red Pine: 일본 붉은 소나무)'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식물학에 눈뜨기 전 일본일들이 먼저 이 나무를 세계에 소개하면서 그렇게 통용된 것이다.
우리 국민이 애국가 가사에도 소나무를 넣어 부르며 제일로 치는 연유를 보면, 우리말로 '솔'은 '수리'가 변한 말로 수리는 '으뜸, 높음, 위'의 뜻이다. 새 중에도 수리라는 이름이 그러하지 않은가? (예: 독수리, 수리부엉이) 또 우리는 아주 옛날부터 아기가 새로 태어나면 남자아이는 솔가지와 고추, 여아는 술가지와 숯, 이런 식으로 솔가지로 금줄을 매었고 아이가 다 자라 혼인을 하면 소나무로 집을 지어 살림을 내었다.
소나무 장작으로는 땔감을 했고, 솔잎으로는 떡을 찌고 술을 빚었으며 꽃가루로는 '다식茶食이라는 귀한 음식을 만들어 제상에 올렸다.
기근이 들어 식량이 모자라면 백성들 대부분이 초근(칡 뿌리)과 목피(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는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오랜 세월 소나무 잎을 먹고 나무를 장작으로 때고 집을 지으며 만들어 낸 이야기와 시詩, 노래 그림 등 소나무에 얽힌 한민족의 자취와 향기는 실로 유구하다.
목재로서의 소나무는 100간 이상의 궁궐을 짓는 황장목黃腸木에서부터 99간까지의 양반, 부자들의 집을 짓는 춘양목春陽木, 일반 백성들의 단칸, 초가삼간을 짓는 뒷동산의 구불구불한 소나무까지 다양하다. 궁궐을 짓는 황장목은 조선 초기부터 금산제도(禁山制度: 나라에서 나무를 베지 못하는 산을 지정하는 재도로 지금의 그린벨트에 해당함)로 지켜낸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황장목 숲의 목재가 유명한데 지금도 이 숲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숲 몇 손가락째에 들 정도이다. 또 경복궁 복원공사에도 여전히 한국 소나무만을 쓰고 있는데 그 분량이 모자라 한때 중국산을 수입해 보았으나 질이 떨어지고 수명이 짧아 포기했다고 한다.
양반, 부자들의 큰 집을 짓는 금강송이나 춘양목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일대의 소나무를 모아 뗏목으로 실어 나르던 것인데 일본인들이 들어와 철도를 놓을 때 이곳에 역을 만들어 목재 운반의 혁신을 한 것이 '억지춘양'이란 말이 생기게 된 유래이다. 억지 춘양은 지금도 산골인 오지奧地 춘양에 억지로 생긴 '춘양역'이라는 뜻으로 경우에 틀리거나 억지를 부리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이처럼 소나무 하나가 기차역을 만들고 옛말이 생겨날 정도로 우리 민족의 소나무 문화는 유별난 것이었다.
소나무의 쓰임새를 부연 설명하면, 예부터 전함이나 선박을 만들었고(거북선도 소나무로 만들었다고 함) 또한 소나무와 공생하여 나는 송이버섯을 빼놓을 수 없다.
송이의 값이 비싼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지금의 첨단 과학기술로도 인공재배가 되지 않는 송이버섯의 뛰어난 맛과 향은 따라갈 것이 없다. 가장 귀하고 값진 약재 중에 '복령'이란 것이 있는데 소나무 뿌리에서 외생균이 공생해서 돋아난 이것은 복용하면 신선이 된다는 영험한 약재로 전해오기도 한다.
동양 여인들의 사랑을 받는 보석 중에 '호박琥珀'이 있는데 이것은 소나무 송진이 오랜 세월 땅속에서 마르며 변형된 것이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지명 중 소나무송松자가 들어간 곳이 681곳이나 된다.
또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도 여럿인데 특히 유명한 소나무로 먼저 속리산 입구의 '정이품송正二品松'을 들 수 있다. 세조世祖 임금이 이곳에 행차할 때 타고 가던 연輦이 가지에 걸리자 스스로 가지를 들어 무사히 지나게 해 이에 탄복한 세조가 정이품 벼슬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경북 예천에 있는 '석송령'은 천여 평의 땅을 소유하고 종합토지세를 내는 부자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 조상 대대로 이어지는 소나무와의 깊은 인연과 문화도 어쩌면 빠른 시일 내에 사라질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미 솔잎혹파리로 많은 송림이 피해를 입었고 이 근래 임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재선충(材線蟲: 소나무 에이즈 또는 소나무 암이라고도 함)'이 1988년 처음 발견된 이후 치명적으로 산림이 파괴되는 것을 손쓰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또한 토양이 비옥해지면서 늘어나는 활엽수 군락의 왕성한 진출도 소나무 숲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도 우리의 소나무 사랑과 노력으로 극복되고, 오랜 날 이 땅에 푸르렀던 소나무의 향기와 역사는 우리 민족의 가슴에 선연히 남아 있을 세계수世界樹로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 (p.20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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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소금』 2022-봄(41)호 <시와 함께 하는 에세이>에서
* 임정현/ 1991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 시집『하루살이가 해에게』등, 공저『껍질에 대하여』등 다수, (사)한국산림문학회 이사, (사)한국숲해설가협회 선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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