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이연옥

검지 정숙자 2022. 2. 1. 02:05

<수필>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이연옥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가장 중요한 안건 중 하나가 '아빠의 노후를 즐겁게 만들어 드리자.'였다.

  그렇다고 그가 즐겁게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르신들과 모여서 고스톱을 한다든지, 가끔 주막집이나 맛 좋은 음식을 찾아다닌다든지, 또 마을 노인정에서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며 지낸다. 하지만 좀 더 발전적인 쪽으로도 시간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젊은 날의 역량을 살려서 활동적으로 움직인다든가, 생각의 세계를 넓히는 취미를 가지고 생활하면 좀 더 뜻있고 즐거운 노후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평생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남편이다. 하지만 이제 농사도 줄어들고 모든 일이 기계화되면서 왠지 모르게 그의 출입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젊었을 때 농사일을 하면서 마을 일을 하느라고 농사일과 마을 일 사이에서 집안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집안 돌아가는 일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집 밖에서 활동하던 일을 하나씩 그만두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이 한 사람씩 줄어들더니 급기야 밖으로 나가는 시간보다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것은 우리 가족인 나와 딸들과 아들이 똑같이 느끼며 걱정하는 일이었다.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지고,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밖으로 나가는 일이 줄어든다는 말이 새삼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집안에 있는 사람을 자꾸 밖으로 내몰 수도 없는 일이다.

  때때로 남편에게 주문을 한다. "우리 뭐 재미있는 거 하나 합시다. 공동으로 할 수 있는 거, 등산을 다닐까? 아님 수영장엘 다닐까?"

  될 수 있으면 함께 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이야기를 꺼내면 등산은 다리가 아파서 못하고, 수영은 자신에게 맞지 않아서 못한다며 핑계를 대기 일쑤다. 하긴 등산은 작년에 다친 발이 아파서 하기 어렵다지만··· 도대체 몸을 움직여서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그를 움직이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마을의 새마을 지도자와 이장, 통장, 영농회장 등 봉사활동을 20년 넘게 해온 그다. 아직은 이렇게 집에만 들어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남편에게 여러 가지 제의를 해본다. "여보, 문화센터에서 하는 붓글씨나 쓰러 다닙시다. 아니면 탁구를 치러 다닙시다." 해도 시큰둥이다. 

  마당에 꽃이 만발하던 어느 날 마당에 핀 백일홍 꽃이 예쁘다면서 "이 사진 어때? 백일홍 꽃 사진 잘 나왔지?" 하면서 핸드폰을 내민다.

  "와, 정말 잘 찍었네요. 이 정도면 그냥 넘어가긴 어려운데 사진을 배우면 정말 좋은 사진 잘 찍겠는데요." 그 말에 남편은 얼굴이 환해지며 어깨가 으쓱한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한 마디 거들었다. "우리 사진 찍는 거나 배웁시다. 사진여행도 하고 인터넷에도 올리고 잘 찍어서 부부 전시회도 하면 좋겠네요." 다른 말엔 시큰둥하더니 사진 찍자는 말에 잠시 솔깃하면서 다른 사진도 보여주며 자기가 찍은 사진이 잘 나왔다고 자랑한다. 내친김에 예총의 아카데미 사진 수업에 접수를 한다고 핸드폰 여니 정색을 하며 핸드폰을 빼앗는다. 그렇게 해서 사진 찍는 일도 그냥 넘어가고 만다.

  즐거운 취미생활을 위해서라면 비용이 좀 드는 골프를 한다고 해도 밀어주겠다고 해도 다 소용없는 일이다.

  작년 이맘때였다. 같은 마을에 사는 육촌 시동생이 건너 마을 양지 편에 있는 활터에 다니는데 좋다고 하며 함께 다니자고 해도 소용없다.

  "이 사람아. 한량들이나 하는 활 놀이를 내가 왜 해!" 라며 건너 마을 활터에는 근처도 가지 않았다.

  "아빠가 활 쏘러 다니면 그 비용은 우리들이 댈게요." 가끔 시집간 딸들이 거들기도 하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너희들이나 해라." 하면서 마치 못할 소리라도 한 듯 핀잔을 주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남편의 요지부동은 한동안 식구들을 걱정스럽게 했다.

  그런데,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그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며 웬 기다란 비단 주머니를 거실에 내려놓았다.

  "그게 뭐예요?" 생전 처음 보는 주머니를 보며 남편을 올려다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했다.

  "이 사람아, 뭐긴 뭐야. 활이지."

  "활이요? 왠 활을?"

  "응 이제부터 활터에 다니기로 했어. 활 쏘는 것도 전신운동이 된다고 해." "팔의 근육이 단단해지고 다리, 허리 모든 부분에 힘이 가고 아마 배도 들어가서 아주 좋다고 그래."

  "와아, 그래요, 잘했어요, 축하해요. 애들에게도 이 소식을 알려야겠네."

  건너 마을에 있는 활터 양지정에 가입을 하니 가까운 친구가 기념으로 활을 사주었다고 했다. 활은 그리 크진 않았다. 처음 만져보는 활의 느낌이 팽팽했다. 활도 배워서 쏘는 정도에 따라, 활을 당기는 팔의 힘에 따라 활의 크기를 높여 간다고 했다.

  거실에 내려놓은 활이 무척 고마웠다. 딸들에게 전화해 아빠가 활터에 가시기로 했다고 하니, 저녁엔 아들딸들이 집으로 모여서 국궁에 입문한 것을 축하를 해주었다. 마치 집안에 경사라도 난 듯이 딸들과 아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하자 남편도 흐믓해 했다.

  이렇게 남편은 요지부동 움직일 줄 모르던 몸을 움직여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직 화살을 재우는 단계는 아니어서 활의 줄을 당기는 연습을 하며 궁도에 빠져들고 있다.

  국궁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갖추어야 할 예법이 많다고 한다. 활터에 가는 날은 옷차림을 반듯하게 하고 간다. 절대로 운동복이나 반바지 차림을 하지 않으며 슬리퍼를 신지 않는다. 사람을 대하는 데도 꼭 예의를 갖추어야 하고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함께하는 사람들끼리 유대관계가 돈독하다. 그래서 취미생활에 점수를 준다면 나는 국궁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나이 들어 한 가지 취미를 갖는다는 일, 그것은 앞으로 남은 시간을 좀 더 건강하고 활기차게 보낼 수 있는 방편이다.

  아무쪼록 남편이 새로 갖게 된 취미로 넓기만 한 허공에 화살을 힘껏 날릴 수 있기를, 마음도 힘차게 날아오르기를 기대해본다. (전문/ p. 8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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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집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2021. 12. 25. <예술가> 펴냄

   * 이연옥/ 1997년『문학공간』신인상, 2010년『예술가』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나비의 시간』『연밭에 이는 바람『산풀향 내리면 이슬이 되고』, 가곡 작사「나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