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Arles 하늘의 별이 된, 빈센트 반 고흐
조성찬/ 관광학 박사
Van Gogh는 네델란드 사람이다. 이름의 Van은 네델란드인들의 이름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설에 의하면 뼈대 있는 집안의 사람이라고 한다. 영어로 from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가문 출신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출신 가문과는 무관하게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은 고달팠다. 반 고흐의 아버지-테오도리스 반 고흐-는 개신교 목사였는데, 반 고흐의 어머니 안나와의 사이에는 6남매가 있었고 반 고흐는 그중 맏이였다. 반 고흐가 태어나기 1년 전 그의 형이 사산되었다. 형의 이름은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빈센트 반 고흐로 지어졌는데, 사산한 아이에 대한 그리움은 그의 부모로 하여금 반 고흐에게 그의 형과 할아버지 이름을 따라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을 갖게 했고, 이로 인해 빈센트 반 고흐는사산된 형의 삶을 대신한다는 압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빈센트 반 고흐의 집안은 유독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친인 안나는 우울증을, 여동생은 조현병을, 동생 코르는 사망 십년 후 자살하게 된다. 반 고흐의 정신적인 지원자이자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는 고흐의 사망 후 6개월이 지나 사망하게 되는데, 고흐의 죽음 이후 정서적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 가족을 학대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고 한다. 대대로 개신교 목사를 이어오며 타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살아왔던 집안의 내력도 가난과 가족의 죽음을 불러온 정신적인 불행을 막을 수는 없다.
(p. 201_그림) "귀를 잃은 후의 빈센트의 자화상, Van GoGh Alive 중에서"
반 고흐는 가정 형편의 어려움으로 인해 15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직장생활은 평탄치 않았고 해고가 반복됐다. 1873년 런던의 그루필 갤러리에서 영국 문화와 사랑에 빠진 반 고흐는 자신의 첫 번째 사랑인 Eugenie Loyer와 현실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정신적으로 쇠약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암스테르담에 있는 신학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하지만, 라틴어를 죽은 언어라 부르며 라틴어 시험을 거부하고, 입학을 거부당하게 된다. 1878년 겨울,
(p. 202_그림)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Van GoGh Alive 중에서"
반 고흐는 벨기에 남부의 탄광촌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병자들을 위해 설교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광부들이 일하는 비참한 노동환경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일이 반복되자 선교단체에서는 고흐를 해고하게 된다. 고흐는 탄광 생활 중에서도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을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광부들은 고흐의 열정과 더불어 자신들이 처한 삶의 현장에 자신을 던지는 고흐를 향해 탄광의 그리스도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순교의 기색을 보이기 시작한 반 고흐의 생활 방식은 교회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p. 203_그림)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 위에서 춤추는 소녀, Van GoGh Alive 중에서"
1880년 브뤼셀로 이주한 반 고흐는 예술가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굳히고,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의 동생 테오는 형의 예술성을 인정하고 그를 재정적, 정신적으로 돕기로 한다. 1886년에 이르러 동생 테오의 파리 아파트로 이주한 그는 인상파 미술을 처음 접하게 되고 색과 빛의 영감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파리의 우울한 겨울과 추위보다는 아름다운 프로방스의 하늘과 빛을 갈구한 반 고흐는 2년간의 파리 생활을 끝내고 1888년 남프랑스의 아를로 이주하게 된다. 이곳에서 자신만의 매우 독창적인 화풍을 발견하게 되고,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노란 집", "고흐의 방", "아를의 원형경기장" 등 유명 작품들을 남기게 된다.
(p. 204_그림) "빈센트 반 고흐의 방, Van GoGh Alive 중에서"
37세의 짧은 생을, 온전히 자신을 불태우는 불꽃으로 살다 간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에서 아를은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곳이다. 아를에서 고흐는 고갱을 만나게 된다. 둘은 당대의 빛나는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사후에 세계적인 예술가로 평가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고갱과 고흐의 만남은 오래 가지 못한다.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게 되는 불행한 사건의 단초가 둘의 만남에서 시작됨을 보면 둘의 관계를 어렵사리 만든 갈등이 만만치 않게 존재했음을 알게 된다. 고흐가 귀를 자르게 된 이유는 여러 설이 있는데 둘의 다툼에서 고갱을 해치려던 고흐가 마음을 돌려 자해했다고 하는가 하면, 환청에 의해 자신의 귀를 자르라는 명령을 듣고 스스로를 해치게 됐다고도 한다. 또한, 귀 전체를 잘랐다 하는가 하면 귓불만 달랐다는 설도 있다. 사건 이후 고흐의 행적에 대해서도 평소 알고 지내던 라셸이라는 창녀에게 잘린 귀를 주었다는 얘기도 있고, 알고 지내던 사창가의 세탁부에게 줬다는 설도 있다. 130여 년 전 천재 화가의 행적이 지금까지도 학자나 호사가들의 관심사에서 떠나지 않고 있음을 보면, 반 고흐가 불태웠던 예술가의 고난이 갖는 상징성이 여전히 크다 할 것이다.
반 고흐는 아를에서 커피와 빵 그리고 압생트 Absinthe('녹색요정'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증류주)를 먹고 살았는데 고흐의 그림에 노란색이 많은 이유가 압생트을 과음한 부작용으로 인해 황시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라거나, 고흐 특유의 그림 표현 방식도 정신질환과 더불어 시각장애에 기인한다는 추측이 있을 정도로 반 고흐와 압생트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으며, 고흐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그는 종종 테레빈유와 페인트를 먹었다고 한다.
지금도 남프랑스와 아를에 가면 반 고흐 그림의 배경이 됐던 카페를 복원한 곳과 그가 입원했던 병원 등이 남아 있다. 반 고흐의 그림 속 장면이, 가능한 한 그대로 유지된 프랑스 아를의 곳곳에서 반 고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 아를에서 반 고흐는 그의 대표작인 '밤의 카페 테라스'라는 명작을 탄생시키며 아를의 아름다운 밤에 대해 여동생에게 소개하는 편지를 썼는데, 그가 아를과 사랑에 빠진 이유를 엿볼 수 있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지. 그 위로 반짝이는 별이 있는 파란 하늘이 있고, 이곳에서 내가 밤을 그리는 것은 나에겐 매우 놀라운 일이야. 특히 이 아름다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은 더없이 기쁜 순간이야. 기 드 모파상의 소설 '벨 아미 Bel Ami'는 밝게 빛나는 카페들과 별이 빛나는 파리의 밤에 대한 묘사로 시작되는데 이 장면은 내가 방금 그린 것과 같은 거야."
(p. 207_그림) "별이 빛나는 밤 위를 걷고 있는 소녀, Van GoGh Alive 중에서"
반 고흐는 죽기 1년 전인 1889년 프랑스 생레미 프로방스의 생폴 드 무솔 정신병원에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 그의 상상과 격렬한 감정이 결합한 캔버스 위의 별이 빛나는 밤은 작품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실제보다 과장된 별의 크기, 고향 마을을 닮은 듯한 마을의 모습 등에서 그림을 그릴 당시 반 고흐의 심적 상태를 알 수 있게 한다. 정신병적인 환상과 더불어 치료 약물로 인해 약해진 육체, 그리고 끝까지 정열적으로 살아 숨 쉬었던 그의 예술가적 광기가 결합해 탄생한 과장된 아름다운 밤하늘의 탄생은, 반 고흐의 소용돌이쳤던 인생을 녹여낸 위대한 작품이 됐다. 혹자는, 그림의 전경에 나타나는 편백나무의 불꽃 모양으로, "별이 빛나는 밤"은 삶과 죽음 사이의 연결고리를 지닌 작품이라고 한다.
37세의 짧은 생을 살다 간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남프랑스 아를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이런 행운을 누려 본 적이 있을까? 하늘은 믿기 어려우리만치 파랗고 햇빛은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하늘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푸른색과 노란색의 조합이 얼마나 부드럽고 매력적인지···"
그렇게 매혹적인 아를의 하늘을 두고 1890년 7월 27일 37세의 반 고흐는 그의 복부에 총을 쐈고, 이 상처로 인해 이틀 후인 7월 29일, 한 많은 예술가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죽어서도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술가적 광기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순례의 발길로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순탄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안타까우나, 그림이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었던 그가 예술로 귀의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적 척박함이 위대한 예술가를 탄생하게 한 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 (p. 200~208)
# 블로그주: 사진은 책에서 일독 要/ (Vincent van Gogh, 1853~1890, 3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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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시마詩魔』 2021. 9. (제9호) <여행인문학>에서
* 조성찬/ 관광학 박사, 전 가톨릭 관동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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